목표 인식 위기가 사회적 행위에 미치는 영향 – 2

무스나드 Musnad에 나오는 이 선지자 언행록에 따르면, 선지자는 그 때 이렇게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우리 종교가 여러 행위를 폭넓게 허용한다는 걸 알겠지. 왜냐하면 나는 정의로우면서, 넓게 포용하는 종교가 보낸 사람이니 말일세.”

 

‘파트 알 바리 Fath al-Bari’에서 이븐 하자르는 이렇게 썼습니다.

“알 나사이는 아미르 이븐 싸아드를 통해 기록하기를, 선지자의 조력자(역주: Prophet’s Helper. 단순히 도움을 준 사람이 아니라, 선지자 무함마드가 메카를 떠나 메디나에 피신했을 때, 선지자와 교우들을 집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말한다)였던 꾸라자 이븐 캅과 아부 마스우드의 말을 근거로, 무슬림은 결혼식 때 즐길 권리가 있다고 했다.”

 

선지자 언행록은 달리기, 말 타기, 레슬링, 활 쏘기, 농담, 놀이 등 여러 형태의 다양한 여가와 오락을 증명합니다. 우리 종교는 인생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쌀만(알 파리시)는 아부 알 다르다 Abu al-Darda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분명, 영혼에게는 우리가 영혼에게 해주어야 할 영혼의 몫이, 왕에게는 왕의 몫이, 손님에게는 손님의 몫이, 가족에겐 가족의 몫이 있는 걸세. 그러니 모든 이들에게 그의 몫을 주고, 모든 일에 그에 맞는 몫을 주어야 하네.”

그리고

후일 선지자는 이에 찬성하는 말을 덧붙였다. “쌀만이 진실을 말했도다.”

 

선지자는 아비시니아 사람들이 성원 내에서 운동하는 것을 허락했고, 두 젊은 소녀들이 아이샤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것을 허락했으며, 유흥과 농담, 경주 등 다양한 여가 활동을 허락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종교가 진지함과 노력과 투쟁을 고취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여가와 놀이, 유흥을 허락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슬람의 영속적 영적 광채는 타종교인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습과 언어까지도 바꾸었습니다.

북 아라비아, 북아프리카, 동아프리카는 아랍어를 쓰는 지역이 아니었지만 이슬람을 받아들인 후 아랍어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슬람의 선구자들은 새로운 문명의 튼튼한 기초를 건설하여 유럽의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그리고 계몽주의가 태동하게끔 했습니다.

 

하지만 의도적 역사 왜곡으로 이슬람이 인류 문명에 기여한 바가 숨겨졌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무슬림조차도 이슬람이 지닌 영적 광채에 관해 거의 혹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늘 날 무슬림은 과학 분야에서 유의미한 기여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본래의 순수성과 일신론적 평등 정신, 모두를 위한정의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적 가치가 다시 힘을 얻어 인류를 각성하도록 해야 합니다. UN은 전쟁을 불법으로 선언했지만, 1950년에서 2000년 사이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전쟁이 일어 났습니다. 따라서 말이나 선언만으로는 소용이 없으며, 서로를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영적 각성이 필요합니다.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의 그리스도교 사상은 인류에게 보편적인 영적 말씀을 전하고, 서로를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인식하도록 하며, 세상의 선한 대의를 위해 봉사하고, 내세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참된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이슬람은 인류가 하나의 근원에서 창조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있고, 그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갈등이나 우월로 이어져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상호 교통해야 하는데 (꾸란에서는 이를 ‘야타아라프’라고 한다), 만약 인류가 모두 똑 같다면 상호 교통의 방법이나 의미가 없었을 것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긍정적 의미에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교통하면서 정치・경제・사회의 정의를 위해 협력할 수 있다. 음과 양, 남과 여가 공통의 이익을 위해 상호 작용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

이슬람은 세상에 다양한 인종이 있고, 다양한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특징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우열을 결정하는 근거가 아니며, 하나님의 창조가 지닌 경이를 인류에게 증언 할 뿐 입니다.

다시 말해 인류의 다양성은 긍정적 현상입니다.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모두에 따르자면, 정의와 개인의 책임이 핵심입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정의를 항상 실천해야 하며 심지어 적에게도 마찬가지로 대해야만 합니다.

 

이슬람은 신앙의 자유를 가져 왔습니다. 이슬람의 이름으로 벌인 전쟁은 오직 자유를 위해서 였 습니다. 자유에 동의한다면 누구나 평화라는 목표도 공유할 것 입니다. 누군가 각자의 믿음과 신앙의 자유를 부정하려 들면 우리 모두가 막아야만 합니다.

 

지구촌에서 서로를 실질적으로 존중하기 위해서는 평화와 자유의 철학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전정한 자유는 그릇된 일이 아니라 올바른 일을 할 자유를 의미합니다. 윤리적 가치, 훌륭한 대의가 없는 자유는 인류를 향한 저주이자 문명의 파괴를 의미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앙공동체의 참다운 역할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섬겨 삶을 윤활하게 만들고 사랑과 신념, 상호 존중의 정신을 불어넣어 삶의 의미를 실현하는 것 입니다.

 

무슬림 사회과학자협회 AMSS, Association of Muslim Social Scientists는 미국 이슬람공동체의 정수를 대표합니다. 자유롭고 개방적 사회 인 미국에 많은 이슬람 지식인이 이주 해 왔습니다. 미국에 사는 무슬림으로 우리가 지닌 지적・경제적 수단을 사용해 이슬람공동체에 발생한 폐단을 제거하고 문화를 개혁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이슬람의 진정한 가치와 윤리 의식, 즉 정의와 책임도 회복해야만 합니다. 이제 조국이 된 미국과 미국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힘을 합쳐 영적・물질적 기여 모두에 소홀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우리 이슬람공동체는 독재자가 채운 억압의 사슬을 끊는 자유의 후원자가 되고, 우리의 신앙과 문화를 개선하며, 인류가 희구하는 정의의 빛을 회복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미국과 세계의 이익을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한다. 미국은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미국의 힘을 잘못 사용하면 인류에 치명적 파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힘이 클수록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과 적절한 영적 지도가 필요합니다. 신앙 공동체는 정의로운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만 합니다. 이는 우리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의무이며, 놓쳐서는 안 되는 기회입니다. 우리는 인류 전체를 위해 노력해야만 합니다.

 

오늘날 세계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감안할 때, 지금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이슬람 문명이 인류 문명에 기여한 역할을 논하고, 다양한 문화와 이념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시작하기 적절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상호 문화 이해 cross-cultural understanding’를 검색하니 자그마치 30만 페이지가 넘게 뜬다. 1)

전세계로 퍼져나간 아브라함의 일신론 종교는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2)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된 오늘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지닌 공통의 기반과 공통의 목표를 이해하고, 인류의 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삶의 영적・ 윤리적 측면에서 똑같이 헌신하는 노력을 서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역사의 왜곡으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정의가 함께 하는 지속적 평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의 세 종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수행할 특별한 역할이 있다. 3)

 

기독교와 이슬람이 인류 문명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동시에 두 종교의 왜곡으로 엄청난 문제들이 발생했고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 기독교는 평화와 관용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이를 왜곡한 자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건설한 수많은 식민지에서 잔인한 제국주의와 불의를 정당화했다. 기독교는 민족주의를 낳았는데, 이는 기회주의자가 증오나 전쟁을 정당화하는 편리한 핑계로 사용했다. 또한 기독교의 선전은 이슬람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전파하기도 했다. 이슬람은 인류 문명을 암흑 시대에서 벗어나게 했고, 실증적 실험 과학과 일원론 개념에 기초한 인류 통합 메시지를 통해 새로운 문명을 만들었다.

4) 종교는 사람의 존재 의미를 결정하는 삶의 여러 측면을 말해준다. 특히 사람의 존재에 관한 세 가지 큰 질문, 즉 사람의 기원과 목적 그리고 운명과 관련이 있다. 이 질문들은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 질문들에 대한 종교의 답에는 철학의 답보다 더 큰 무게가 실린다. 왜냐하면, 거대 질문에 대한 종교의 결론은 합리적 논증뿐 아니라 정서적 공감까지 얻는다. 이러한 차이로 종교에 기반한 신념은 행동을 더 쉽게 이끌어낸다. 이 점에서 종교가 철학보다 유리한 면이 있다. 사람이 순수하게 이성적 논증에 기초해 수립한 이상에 따라 행동할 때보다 종교적 이상을 추구할 때, 더 큰 어려움을 견뎌내고 더 큰 희생을 감수한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종교적 힘의 근원은 약점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오류에 빠진 사람을 설득할 때, 논리로 설득하기는 쉬우나 종교 신념을 동반한 오류를 교정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다. 또한 공적 영역에서 종교적 신념을 공유하는 집단은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만,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개인 간, 공동체 간에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더 크다. 여기서 우리가 당면한 질문은 종교와 정치가 서로 갈등하는지, 아니면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는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종교적 헌신이 사회생활의 수준을 높이고 향상시킬 수 있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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