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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와 신의 의인화

그리스도교가 신을 이해하는 독특한 점은 신(神)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간으로 살고 가르치고 죽고 부활했다는 개념입니다.

 

 

 

그리스도교 최종 계시는 예수가 신이라는 게 아니라, 신이 곧 예수라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이 신은 인간실체를 하고 인간언어를 쓰면서 완전한 인간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는 불가피하게 그리스도교가 이해하는 신이, 본질적으로 그리고 글자 그대로, 신체주의와 의인화에 기반한다는 뜻입니다.

 

 

 

역사 속 인간 나자렛 예수가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 이였노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신성(神性)이 ‘인간의 형상’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해야 하며, 이는 그리스어로 ‘의인화를 뜻하는 단어 ‘anthropomorphism’에서 ‘anthropos (인간)’와 ‘morphe (형상)’가 뜻하는 바와 정확히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이런 주장을 포착하려면 먼저 두 가지 점을 집중해 보아야만 합니다.

 

첫째, 신약성서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교신앙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행위를 두고 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교 교리 형성과정을 보면, 그리스도가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며 둘이 하나라는 내용이 구원교리에 필수적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그리스도교의 육화 신학은 철저하게 신체주의에 기반하고 있어서 아브라함 종교에서 신체주의 사상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유대인 가운데에 존재했었고, 유대 경전을 존중했으며, 자신이 율법의 완성자라고 했습니다.

 

유대교의 고위 사제들을 상대로 싸웠으며, 이스라엘 가문이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왔다 했습니다. 신과 신의 초월성에 관한 예수의 생각이 있었겠지만, 아마도 유대인이 신을 인식하는 개념과 크게 충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은 당시 유대교가 지녔던, 창조주의 통일성, 유일성, 숭고성을 의미하는 신성초월성과 유일신론 교리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약간의 의인화 경향을 가미해서는 초기 교회신앙을 형성했습니다.

 

 

 

역사 자료들로 보건대, 그리스도교는 영지주의자나 마르키온 주의 Marcionite 이원론자 등 다신교의 주장에 반박하는 무기로 초월적 유일신론을 사용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Clement of Alexandria를 비롯한 여러 교부는 히브리 성서의 의인화 표현을 비유함으로써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면, 카이사리아의 성 바실 Saint Basil of Caesarea(330-379)은 “하나님이 고개를 돌리셨다”는 표현을 하나님이 “어려움에 처한 이를 버리셨다”라고 해석을 했고,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Gregory of Nazianzus는 “하나님의 얼굴”을 “하나님의 지켜보심”으로, 테오도렛 Theodoret은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다마스커스의 존 John of Damascus은 “하나님이 존재를 드러내심”으로 각각 해석했습니다.

 

 

 

반면, 신약성서에는 의인화 표현이 거의 없어서. 흔치 않은 사례를 살펴보자면, 신의 손가락(누가 11:20), 신의 입(마태 4:4), 신의 모습(누가 16:15), 땅이 하나님의 발판(마태 5:35)이라는 표현 등이 있는데, 모두 비유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렌티누스 주의자 Valentinians (역주: 발렌티누스 주의는 2세기에 발렌티누스가 설립한 영지주의 운동의 한 분파)와 멜리토 Melito 주교(역주: 180년 사망. 아나톨리아 지역 서부 사르디스의 주교), 테르툴리아누스 Tertullian (역주: 160-200. 튀니지에서 활동한 그리스도교 교부. 삼위일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등 다른 교부들 신체주의적이고 의인화된 신 개념을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이레네오 Irenaeus (역주: 2세기초 출생-AD 202년경 사망. 로마 영토였던 갈리아의 주교)는 인간의 육체에서 신의 형상을 발견합니다.

 

 

 

클레멘스보다 2세기 후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와 그리스도교인 사이에 여전히 팽배한 신의 의인화와 신체주의적 경향을 반박했습니다.

 

 

 

신약성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가 신이었으며 그 사실을 스스로 인지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주장이 다신론이나 신의 인간 신체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놀랍게 오늘날까지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이성적 사고의 결과물로서 보기는 힘듭니다.

 

 

 

사실관계를 살펴보자면,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삼위일체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초월적, 불가분적, 넘어설 수 없는, 특유한, 영원속성을 지닌 하나님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민감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사변적 작업과 추론이 이루어졌지만, 논리적으로 만족할만한 해답은 없습니다.

 

 

 

카파도키아 운동 cappadocian movement (역주: 3세기경 현 터키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활동했던 교부들의 신학 운동)의 사회적 삼위일체주의 social trinitarianism 혹은 바르트(역주: 카를 바르트

 

Karl Barth 1886-1968. 스위스 개신교 신학자)의 결합 삼위일체 union trinity를 수용해도 여전히 신체주의와 의인화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인간 그리스도의 형태로 나타난 신은 존재양식의 하나이든 삼위일체 중 하나이든 명백한 신체주의 사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 그리스도가 신성을 지니고 삼위일체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며 모든 점에서 신과 동등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 인성이 거의 모든 점에서 (원죄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인간과 동등하다는 전통적 그리스도교의 주장도 역시 문제입니다.

 

 

 

이런 입장은 역설이고 모순이며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근본교리가 합리적 사고방식에 대한 호소력이 거의 없으며, 특히 엄격한 기준으로 세부 사항을 면밀히 조사하는 현대인이 이해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많은 현대그리스도교 학자와 신학자가, 전통적 주장을 폐기하거나 부인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대인들 주장의 타당성이나 합리적 증명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합니다.

 

결국, 순환논리에 빠져 주장을 논리로 증명하는 대신, 이미 수 세기 전에 나왔던 주장이나 이미 이단으로서 폐기했던 주장을 되풀이할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서도 의인화, 신체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신약성서에서 비롯했습니다. 신약성서 어느 구절도 예수가 직접 쓰거나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신약성서는 예수 이후 다양한 장소, 다양한 공동체, 여러 시대에 걸친 여러 작가의 산물입니다. 신약성서가 오늘날의 형태를 갖춘 것은 예수와 사도들이 떠나고 수 세기가 지난 후였습니다. 신약성서를 이루는 각 장은 각기 특정집단이, 특정필요를 위해 쓴 글이고, 이 문서를 하나의 권위 있는 책으로 묶은 것은 후대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 문서를 묶어 책으로 만든 동기 중 하나는 아마도 기존 히브리 성서가 있었기 때문 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교회 내에서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자료 수집과 구성, 어떤 자료를 정전(正典)으로 인정할 것인지 등을 논의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아는 신약성서가 완성되는 데에 367년이 걸렸습니다.

 

신약성서의 작성자와 장소, 시기, 출처 등 구성 과정과 역사는 신약성서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립니다. 전통적 혹은 그리스도교 정통 학자들은 신약성서가 절대적 진본이며, 신약성서에 나오는 사도들이 직접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라고 단언합니다.

 

 

 

오늘날의 비판적 성경학자들은 신약성서에 형식비판, 편집비판, 문학비판, 역사적 접근 등을 통해 신약성서의 진본성과 영감 설 등 전통적 견해에 대해 반박합니다. 신약성서는 예수 직계 제자들의 작품이 아니며, 그들이 떠나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우리가 모르는 작성자들의 글을 편찬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바울의 편지를 제외한 나머지 신약성서의 집필과 관련 상황(작성자, 시간, 장소, 계기 그리고 더 구체적인 모든 정황)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본인은 제자들에게 어떤 것도 써두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의 부활 이후, 제자들은 세상종말과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다는 믿음을 설교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에, 예수말씀을 글로 남기는 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세상이 곧 끝난다고 생각하고 선지자의 말을 즉각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말씀을 글로 남기기 보다 말로서 전하는 데에 집중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의 복음은 두 세대가 지날 때까지 말로 전해졌고, 예수재림을 기대하는 열기가 서서히 수그러들었습니다. 예수가 재림하지 않자 여러 문제가 발생했고, 이때쯤 책을 편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편찬하며 예수가 전한 말씀에 다른 말들이 덧붙여졌습니다.

 

 

 

복음서들은 50~60년에 걸쳐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신약성서 작성자들은 역사적 사건을 원래 형태 그대로 기록하는 전기작가가 아니었습니다. 작성자들은 특정한 현안에 반응하는, 특정목적을 가졌었습니다. 그들은 당대 신학자였고, 전해야 할 그들 메시지가 있었으며, 복음서가 쓰여지기 40~70년 전에 일어난 일을 기록할 때 확실히 사실만을 기록하기 어려웠습니다. 예수가 실제로 자신에 관해 밝힌 말과 초기 교회가 예수를 그리스도, 주님, 신의 아들 등으로 해석한 것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었습니다.

 

신약성서가 그리스도와 관련된 여러 사건에 관한 해석일 뿐, 예수가 자신을 어떻게 말했는지, 진짜 누구였는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못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정전으로 확정하는 과정은 수 세기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서방 교회의 정전은 5세기경,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제롬의 영향 아래 확정되었으며 동방 정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전을 결정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에우제비우스 주교에게 명령하여 성서 50부를 새로운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배포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서 신약성서 27권이 준공식적 인정을 얻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읽는 신약성서는 예수가 죽고 300여 년이 지난 후 일부 그리스도교 주교들이 황제의 명으로 승인한 책입니다. 3세기는 긴 시간입니다. 신약성서를 오류에서 지키기 위해 이 기간 내내 성령의 가호와 지도가 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분명한 결론은 신약성서의 작성자와 편집자 그리고 정전으로 만드는데 간여한 이들 모두가 그저 보통의 인간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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