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의인화

Originally posted 2020-02-12 11:57:31.

이 내용은 인간이 인간 용어로 신을 그리면서 어떻게 왜곡 해 표현 해 왔는지 살펴보려는 시도입니다. 왜곡이 발생 한 이유가 (필자가 이미 제시한 대로 문제가 많은) 경전 때문이라는 주장과 신을

묘사한 문구를 비유로 해석해야 하는지, 글자 그대로 해석해야 하는지에 관한 신학 논쟁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유가 어느 쪽이든 간에 신을 의인화하는 것, 신에게 인간 속성이나 감정을 투영하는 것, 언어나 물리적인 형체로 신을 형상화하는 것은 엄격한 일신론과 반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을 신체주의로 묘사하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강해 질 수록, 초월적이고 유일한 하나님의 개념과 통일성을 인식하는 내면이 약화되고 심지어 사라지는데 이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드러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감추어지고, 하나님의 본성, 본질, 외적 형태에 관한 끝 없는 신학적 연구와 과열된 논쟁만이 늘어 날 뿐이라는 것이 역사를 통해 본 결과입니다. 이 반비례 관계는 그 자체로 주목할 의미 있는 것 입니다.

 

모호성은 또 다른 모호성을 낳게 됩니다. 의인화 개념을 일단 도입하면, 신의 통일성과 초월성 이해에 혼란이 더 커지기 때문에, 꾸란은 이를 명확하고 제한된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무슬림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꾸란과 무함마드 언행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로서 여기는 하나님의 초월적 유일성(타우히드)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 입니다.

이 점은 꾸란에서 너무나도 명백히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이슬람에 있어서 하나님은 늘 홀로 계시며, 유일하시고, 장엄 하십니다.

그리고 무슬림은 우상숭배 (쉬르크), 즉 하나님께 동반자를 세워, 하나님의 단일성과 초월성을 훼손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반면, 기독교 성서에서 하나님의 개념은 의인화, 신체화가 되어 있으며, 때때로 인간 지성과 논리에 어긋나기도 합니다.

 

이 내용 진행한 연구에서 일차적 주장과 발견 그리고 결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가 있습니다.

(1) 히브리 성서에서 제시하는 신을 인식하는 체계는 일관되지가 않고,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초월적 일신론이 등장하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제시 한다든지, 명확히 설명하거나, 오독과 훼손을 방지 하기에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의인 화 개념은 히브리 성서 여러 곳에 나타납니다. 우리가 히브리 성서에서 신의 절대적 타자성과 초월성 개념을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모순적 문장과 주장을 걸러내고, 너무나 많은 정보 사이를 헤매며, 분명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외부의 도움 없이 그 문제를 극복 하기에는 불가능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성 의인화의 개념은 놀라울 정도로 명백합니다.

조악한 의인화 묘사, 즉 신을 인간의 속성이나 특성으로 묘사한 부분이 너무 흔해서 히브리 성서를 대충 읽은 사람도 신이 틀림없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것 입니다.

 

성서에서 나오는 많은 의인화는 많은 경우에 일차원적 이고 조악하며, 또 때로는 구체적인 신체로 묘사합니다. 이런 사실적인 묘사는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종교가 아니라면 결코 필요하지가 않습니다.

신이 육체를 지니고, 걷고, 말하고, 누군가를 찾아 다니고, 울고, 흐느끼고, 쉬고, 싸우고, 후회하고, 한탄합니다.

 

어떤 순간에는 초월적 신이 지닌 기본적 특성인 힘, 지식, 자비, 정의, 공평함, 보편성 등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며, 또한 신은 인간이 지닌 많은 한계와 특징을 갖고 있어서, 마치 높은 지위에 있는 인간이나 훨씬 큰 비율의 인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구절 중 많은 부분을 비유로 해석할 수 있지만, 비유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원전이 지닌 원래의 뜻을 부정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때로는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앞에 있는 존재가 실은 인간이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어 낸 신이며, 그 반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창조 된 형상은 창조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입니다.

 

요약하자면, 히브리 성서에서 묘사하는 신은 초월적이고 완벽한 존재 인 신으로 보이지 않으며, 인간이 지닌 수많은 약점으로 고통을 겪는 유약한 존재이자 인간을 초자연적으로 바꿔 거울에 투영한 존재일 뿐 입니다.

 

(2) 히브리 성서에서 신을 인식하는 체계는 고정되어 있지를 않고, 시간이 흐르면서 변합니다. 후기 선지자들, 특히 BC 8세기 이후 선지자들이 가진 신 개념은 여전히 어느 정도 의인화되어 있거나 신체주의에 기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선지자들의 개념보다 정교하고 체계적이며 통일이 되어 있습니다.

 

성서 원전으로만 보면 후기 선지자들의 신 개념은 초기 선지자에 비해 의인화 된 정도가 약하지만 다른 방식으로는 여전히 존재 해 있습니다.

 

즉 상대적으로 세련된 표현을 쓰고, 때때로 신비로운 경험이나 영적 성찰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이에 앞서는 모세 오경이나 기타 초기 경전과 비교하면 비유로 해석할 여지가 훨씬 더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의인화 된, 불완전한 신성과 개념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3) 랍비 전통(역주: 탈무드, 미드라쉬 등 토라 해설서에 나오는 랍비 들의 이야기)에서 말하는 신의 개념은 히브리 성서 개념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런데 때때로 랍비 전통의 신이 히브리 성서 신보다 더 인간에 가까운 친근한 존재로 보이기도 합니다.

 

(4) 신체주의나 의인화를 배제한 철학적・초월적 사고는 (유대 신앙공동체 일반에게) 비 성서적인 것으로 치부 되었습니다.

랍비 시대 이후 수 세기 동안 유대 전통에서 철학적・초월적 방식으로 신을 인식하는 개념은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필론이나 마이모니데스 같은 일부 합리적 사람이 (대부분 외부의 영향을 받아) 히브리의 신 개념에 철학적 초월성을 접목하려 했지만, 유대교 정통파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를 했습니다.

그들의 견해는 경전과 히브리 유산에 맞지 않는 것으로 간주 되었습니다.

 

(5) 성서에서 나오는 의인화 표현의 기원이 인간 본성에 있다는 것을 추론 하기에는 어렵지 않습니다.

히브리 성서가 말 하는 신체주의적 표현과 의인화는 인간 창의력이 결정 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히브리 성서 기원과 성격을 결정 한 인간적인 요소를 오랫동안 무시 해 왔지만, 19세기에 들어 많은 성서학자가 이 점을 강조하기 시작 했습니다. 이 점은 특히 학계에서 히브리 성서의 신학적・윤리적・종교적 문제점을 설명하기 위한 거의 표준적 이해 방식이 되었습니다.

 

(6) 히브리 성서가 틀림없이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라는 전통적 주장을 논리적・합리적으로 증명하기는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오늘 날 비판적 학자들은 이를 인간의 말이거나 아니면 긍정적으로 본다 해도 하나님의 말과 인간의 말이 섞인 결과로서 봅니다.

 

학자들은 수 세기 동안 미로에서 헤매는 것 같이 은유적인 해석과 신성에 극단적으로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주장을 해 왔습니다. 이 문장들에 무한 한 깊이와 신비를 지녔다는 증거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그것을 쓴 인간 필자들이 지닌 불완전성과 한계 그리고 사고의 저 급성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 입니다.

 

거의 모든 성서학자가 인정한 이런 문제들이 히브리 성서가 현재 모습으로는 결코 하나님 말씀으로서 간주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7) 신약성서는 히브리 인의 담론에서 벗어 나 헬레니즘 사상과 세계관에 가까워 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신 중심 이라기 보다 그리스도 중심입니다.

신약성서에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양한 상호 모순적 이야기보다 다양한 신학 이론 (그리스도론)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신학 이론에 문제가 더 많고, 서로 어긋나 있으며,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맙니다.

 

(8) 신약성서는 예수가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거나 쓴 것이 아니며, 아마도 예수가 생각 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도 아닐 것 입니다.

신약성서는 교회와 이후 그리스도교 인이 예수를 연구 한, 그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예수 모습을 그린 책 입니다.

 

(9) 전통적 그리스도의 육신화 신학은 그리스도가 떠난 후에도 수 세기 동안 이루어진 연구와 논쟁, 이론 발전의 결과 이었습니다. 이는 신약성서의 문장에서 필연적으로 도출 된 것도 아니고, 순수한 신학 탐구의 결과물도 역시 아닙니다.

문화 현실, 정치 동기, 사적 필요, 심지어 복수심까지도 신학 내용과 형식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신약성서를 글자 그대로 연구하건, 어떤 식으로 탐구하든 간에 육신화의 신학을 명확하게 유추해낼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별도의 외부 요소를 감안하거나 임의 해석을 끼워 넣지 않고 신약성서만을 근거로 해석한다면, 누구도 육신화의 신학이 신약성서의 핵심이라고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일부 문장에서 추론하는 것은 가능 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원전의 내용을 그 뜻에 맞게 끔 어느 정도 왜곡이 필요 할 수 밖에 없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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