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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의 위기와 샤리아의 높은 목표에 대한 인식 부재-2편

“압둘라 이븐 사바는 …… 우스만의 시대에 무슬림이 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무슬림 지역에서 혹세무민하고 다녔습니다. 그는 히자즈에서 시작해, 바스라, 쿠파를 거쳐 후일 레반트에 도착했습니다. 레반트에서 그는 자기 계획을 실행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추방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집트로 가서 주위에 말썽꾼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행동계획을 짜주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통치자의 명성을 떨어뜨려서 반란을 선동하고, 사람들을 그대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함’의 의무를 주장하라. 그런 다음 그들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라.”

 

 

 

그는 말썽꾼들을 밀사로 삼아 여러 도시의 타락한 자 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들은 응답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함’의 의무를 수행하는 중이라고 주장하면서, 비밀리에 음모를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각 지역의 말썽꾼들은 서로 편지를 교환하면서 통치자들에 대한 거짓 혐의를 꾸며냈고, 그들이 퍼뜨린 거짓 소문은 메디나까지 퍼져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비밀을 잘 지켰기 때문에 한 지역에 있는 자는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함’의 의무는 필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선(善)보다 악(惡)을 낳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이슬람의 의무와 관련된 원리들을 요약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함’은 공동체의 의무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파르드 키파야)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개인의 의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파르드아인)

 

이븐 타이미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함’은 개인의 의무가 아니다. 그보다는 꾸란이 규정한대로, 이는 공동체의 의무다. ……

 

따라서 이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이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정도로만 의무를 수행하면 됩니다.

 

 

 

이에 대해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들 중 누구라도 악을 보게 되면 직접 고치시오. 하지만 그리할 능력이 없다면, 말로라도 고치시오. 그런 말을 할 형편도 안 된다면, 마음속에서라도 치시오. 이것이 신앙을 가장 약한 형태로나마 표현하는 것입니다.”

 

 

 

둘째: 해석의 문제는 비판 대상이 아닙니다.

 

이븐 타이미야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슬람의 법적 문서를 해석하는 과정에 어떤 이는 특정 학자의 견해를 채택할 수 있고, 이는 결코 비난 받을만한 일이 아니다. 경쟁하는 두 견해 사이에서 한 쪽을 선택하는 것 역시, 선택한 이가 그 쪽 견해에서 더 확실한 증거를 찾았다면 비난을 받을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최고의 견해를 얻기 위해 다른 학자의 결정에 기대야 할 것이다.”

 

 

 

아부 얄라 Abu Yala 판사가 자신의 저서 ‘알 아캄 알 술타니야 al-Ahkam al-Sultaniyyah’에서 지적했듯이 누구도 그가 취한 입장 때문에 비판 받아서는 안 됩니다. 물론 그 입장이 금지된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에 말입니다.

 

 

 

셋째: 변화는 상황이 요구하는 만큼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맘 알 가잘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경고는 잘못이 일어나기 전에만 의미가 있고, 처벌은 잘못이 일어난 후에만 의미가 있으며, 저항이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잘못에 대해서만 의미가 있다. 시민 개인에게 요구되는 의무는 오직 진행 중인 잘못에 저항하는 것 뿐이다. 이를 넘어 과거의 잘못에 대한 처벌이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경고는 개인이 아니라 사법 기관의 권한에 속한다.”

 

 

 

이맘 알 샤우카니에 따르면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하는 일은, “가볍게 타이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소용 없으면 좀 더 강하게 꾸짖어야 하고, 그래도 안 통하면 행동을 통해 상황을 바꾸어야 한다. ……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없을 때만 그렇게 해야 한다.”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구체적 기준을 가지고 앞서 말한 단계들을 파악해야 합니다.

 

 

 

넷째: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마음으로부터 악(惡)을 혐오해야 합니다.

 

어느 날 이븐 마스우드는 어떤 사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누구든지 정의를 추구하여 불의를 금하지 않는 이는 멸망하리라.” 그러자 이븐 마스우드는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아닐세, 누구든 마음 속에서부터 정의와 불의를 인식하지 않는 이는 멸망할 것이네.”

 

 

 

여기서 이븐 마스우드는 마음속으로 정의와 불의를 인식하는 것은 누구도 면제될 수 없는 의무

 

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인식에 실패하는 사람은 영혼의 파멸을 겪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말과 행동을 통해 악에 맞서는 의무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됩니다.

 

 

 

다섯째: 말과 행동으로 변화를 일으킬 의무의 정도는 그 사람의 능력과 상황, 그리고 관련된 인간의 이익 가중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하는 의무를 수행하는 수단과 관련하여, 알 자싸스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선지자는 악의 금지가 당사자의 능력이나 상황에 따라 세 형태를 띄운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전해보자면, 그가 행동으로 악을 교정할 수 없다면, 말로 해야 하고, 말로 그것을 교정할 수 없다면, 마음 속으로 그것을 비난해야 한다.”

 

 

 

이븐 알 까이임은 악의 금지를 네 유형으로 구분했습니다.

 

(1) 악을 제거하고 그것을 반대의 것으로 바꾼다.

 

(2) 악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약화시킨다. (앞의 두 가능성은 샤리아와 일치한다.)

 

(3) 악을 다른 악으로 교체한다. 이는 조심스러운 해석이 필요하다.

 

(4) 악을 더 큰 악으로 교체한다. 이는 분명히 금지된 것이다.

 

 

 

여섯 번째: 박해나 여타 피해가 두려워서, 미덕을 장려하고 악덕을 방지하는 일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이븐 라잡 Ibn Rajab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약 어떤 이가 통치자를 비판하는 것이 가족이나 이웃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면, 참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푸다일 이븐 이야드 Fudayl ibn Iyad와 여러 학자들의 입장이다. 따라서 만약 어떤 이가 죽거나, 채찍질 당하거나, 감옥에 가거나, 사슬에 묶이거나, 추방당하거나, 재산을 압류당할 것이 걱정된다면, 그는 통치자에게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하는’ 의무로부터 면제된다.

 

이맘 말리크 이븐 아나스 Malik ibn Anas, 아흐마드 이븐 한발 Ahmad Ibn Hanbal, 이샤끄 이븐 라흐와이 Ishaq ibn Rahwayh 등 지도적 학자들은 이에 대해 명백히 말하고 있다. 이맘 아흐마드는,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 앞에 나가 도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의 칼날이 도전하는 자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를 감내할 만큼 강해서 악에 대적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자는 훌륭하고 바람직한 사람이다.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선의 지하드는 압제자의 면전에서 내뱉는 한 마디의 진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조차 다음 조건을 따릅니다.

 

(1) 비난이 긍정적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될 것.

 

(2) 타인들에게 피해를 초래하지 않을 것.

 

(3) 더 큰 피해를 초래하지 않을 것.

 

 

 

일곱 번째: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두 견해가 있습니다.

 

 

 

첫 번째 견해는, 그런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경우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알 아우자이, 알 가잘리, 알 이즈 등의 학자와 이븐 우마르, 이븐 마스우드 등 (선지자의) 많은 교우도 취한 입장이며, 선지자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하는 노력을 계속하시오. 하지만 사람들이 끝내 욕심에 사로잡혀 인색한 구두쇠처럼 굴고, 고집스럽게 남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 때는 그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그만 두시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이들은 선지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최후의 날, 즉 더 이상 미덕의 보급과 악덕의 금지가 의미가 없어질 때가 오면 자기들끼리만 모여 있으라고 권유한 사실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견해는,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금하는 것은 모든 경우에 의무가 됩니다.

 

이는 알 나와위와 알 자사스가 취한 입장인데, 그들은 ‘안식일 sabbath 파괴자’의 사례를 자신들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여덟 번째: 다음은 선을 추구하고 악을 금하는 의무와 관련된 것으로 전제군주적 지도자에 대항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를 논합니다.

 

 

 

사악하거나 전제군주적 통치자에 맞서 일어나는 것이 허용되는가, 하는 문제에 학자 간 의견이 다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알 샤흐리스타니 al-Shahristani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무슬림 공동체 내에서 가장 큰 분란의 근원은 누가 지배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실로 무슬림들은 신앙 문제를 놓고 싸운 적은 별로 없지만, 누가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놓고는 주저 없이 칼을 뽑았었다.”

 

 

 

사악하거나 전제군주적 통치자에 맞선 저항을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알 나와위와 같은 순니파 학자 대부분은 이는 금지된다고 주장하는데, 이 견해가 만장일치로 인정된다고 합니다.

 

무타질라 학파, 카리지트 학파 그리고 자이디파는 이것이 허용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그들 중 일부에서는 그런 통치자에게 저항하는 것을 의무로 간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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