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대한 왜곡-3편

Originally posted 2019-09-22 05:07:53.

이제 무슬림은 하나님의 명에 따라 이슬람을 바깥 세상에 알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원거리 통신체계나 신문 혹은 소위 대중매체라 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 즉 직접적인 대인 접촉뿐이었고, 이는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소규모의 비무장집단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규모 무장 보호 집단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분명 군대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무슬림은 여러 시기에 여러 지역으로 국경을 넘었습니다.

 

이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잘 보아야 합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로마와 페르시아라는 외세에 오랫동안 시달렸던 현지인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던 많은 사람에게 처음으로 이슬람을 권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슬람의 세금(구빈세)에 상당하는 헌금을 지불하도록 했습니다.

 

 

 

이 세금을 요구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납세자가 헌금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이슬람을 접했지만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슬람을 거부했다는 점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2) 납세자를 보호하고 안전과 자유를 보장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납세자의 위험은 곧 무슬림 동포의 위험이었으며, 무슬림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무슬림 역시 지키고 안전을 보장해야 했습니다.

 

(3) 새로운 사태는 모두의 지지와 협조, 즉 무슬림에게는 구빈세를, 비무슬림에게는 헌금을 요청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공익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4) 납세자가 새로운 형제를 적대하거나, 무슬림이 된 동포를 괴롭힐 생각이 없음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이슬람을 배척하고 반군을 지원하기 위해 다른 분파들과 공모하여 납세를 거부한 자들은 스스로 사태를 악화시켰습니다. 처음부터 적대행각을 벌였던 그들이기에, 특히 숫자가 적은 무슬림이나 개종자, 헌금납부인를 상대로 일을 꾸몄습니다. 이는 국가에 대한 반역이자 인간적으로 야비한 짓이었고, 사회 혼란이자 군사적 도발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진압이 필요한 사태였습니다.

 

 

 

새로이 온 무슬림 안녕뿐만 아니라 이러한 반역자가 사는 지역의 치안을 위해 진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는 혼란 세력을 안정시키고, 시민의 책임, 즉 이슬람을 받아들인 사람과 헌금을 내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공유하는 성실한 시민의 책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 유일한 경우였습니다.

 

 

 

3. 이슬람 비판자들은 정직한 의도를 갖고, 꾸란이 전쟁과 평화에 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연구하는 편이 현명할 것입니다. 무슬림과 접촉한 전후 피정복민의 지위와 생활조건을 연구해보면 더욱 좋습니다.

 

 

 

페르시아와 로마 속령에 살던 지역 사람들이 외세의 억압적 통치로부터 해방시켜 달라고 무슬림에게 절박하게 호소했다는 사실을 알면 비판자들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무슬림의 보호와 정의로운 통치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무슬림 정복자가 크게 환영 받았다는 사실을 비판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피정복민들이 쳐들어오는 무슬림을 환영했을 뿐 아니라 무슬림 편에 서서 압제자와 싸운 현상을 비판자들은 어떻게 설명할까요? 이슬람 점령 지역의 번영과 자유, 발전을 이전과 비교해 어떻게 이해할까요?

 

 

 

우리는 이런 문제에 관해 특별한 관점을 제시하거나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문제는 재고와 신중한 연구의 여지가 있다고 믿을 뿐입니다. 연구 결과는 확실히 흥미롭고 의미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를 열강이 지배하는 현대 국제 관계에 비추어 비교한다면 이해가 더 잘될 것입니다.

 

 

 

4. 무슬림이 다른 나라에서 전쟁을 벌인 요인이 아랍인의 경제적 필요 때문이었다는 주장 역시 재고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역사적 사실을 진지하게 연구한 것이 아닌 근거와 사실관계 확인이 부족한 추측에 불과합니다.

 

 

 

진심으로 경제적 필요 때문에 무슬림이 아라비아 국경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어떤 근거에서 고대로부터 상거래의 중심지였던 아라비아가 더 이상 무슬림을 충분히 부양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걸까요? ‘침공한’ 무슬림이 어느 정도로 자급자족했으며 백성들에게 얼마나 분배했고, 메디나, 다마스커스, 바그다드, 카이로에 있는 중앙정부에 얼마나 보냈는지를 신중하게 조사해본 걸까요? ‘

 

 

 

점령’ 지역의 이슬람 이전 소득과 비교해 보고, 무슬림의 이익만 추구한 투기꾼인지를 밝혀 낸 걸까요? 당시 무슬림이 준 것보다 뺏은 게 더 많다거나 혹은 투자한 것보다 벌어들인 게 더 많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라비아의 중앙정부가 지역 발전에 필요한 공물이나 조세를 갈취했다면 그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라도 발견했을까요? 또 그렇다면 얼마나 많이 받았으며, 그것이 미지의 세계에서 모험할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알아낸 걸까요? 점령 지역보다 아라비아가 세출이나 발전 계획 면에서 특권이나 우선권이 있었다는 믿을 만한 정보라도 입수했나요? 끝으로 아라비아가 인구폭발의 위협을 갑자기 의식한 나머지 무슬림이 부득이하게 전쟁이나 경제적 침탈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요?

 

 

 

무슬림이 비무슬림과 접촉한 것을 경제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참신하고 설득력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관계 확인이나 근거가 없고, 학문적 연구 결과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시도는 진실을 밝히는데 만족스럽거나 완벽하지 못합니다. 아직도 연구, 조사, 분석, 비교 여지가 상당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연구가 이루어질 때까지 비판자들은 이론적

 

가정을 타당하고 적절하다고 주장할 도덕적 권리가 없습니다.

 

이슬람은 다시 한 번 모든 비판자에게 더욱 진지하게 진실을 탐구할 것을 권합니다.

 

 

 

5. 무슬림이 약탈을 위해 전쟁을 벌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주장을 엉성하고 상투적인 견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주장이 학문의 지름길이고, 지적・윤리적 질문을 회피하는 쉬운 방법일지는 모르지만, 결코 진실은 아닙니다.

 

 

 

3항과 4항의 주장에는 얼마나 많은 전리품을 아라비아로 보냈는지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고, 근거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바로 이러한 ‘약탈자’에게 짓밟힌 ‘약탈당한’ 지역이 전보다 더 번영하고 융성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오히려 무슬림이 모진 박해와 그리고 엄청난 인명과 재산 손실을 보았고, 도발과 위협에 직면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습니다. ‘무슬림 약탈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책임 있는 결론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설령 무슬림이 전리품을 얻었다 해도, 이는 해당 지역에서 무슬림이 몰수・강탈당하고 빼앗긴 것 에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여러 가지 논리로 비판하는 비판자들이 반박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슬람은 완전한 의미에서 평화의 종교이고, 이슬람의 가르침에 부당한 전쟁은 결코 없으며, 침략이 교의에 포함되거나 이슬람에 의해 용납되는 일도 결코 없고, 누구에게도 무력을 통해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슬람의 팽창은 강요나 억압 때문이 결코 아니며, 착복은 하나님이 용서하거나 이슬람이 용납하지 않고, 이슬람의 가르침을 왜곡하거나 잘못 전하는 자는 자신과 동료들에게 더 큰 해를 입히게 될 것입니다.

 

 

 

이슬람은 하나님의 종교이며, 하나님께로 가는 바른길이기에 어려운 조건 아래서도 살아남았으니, 영원한 행복으로 이르는 안전한 다리로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의심스럽다면 이슬람을 연구하고 꾸란을 읽어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인지함이 현명할 것입니다.

 

 

 

이슬람이 전파된 지역에 경제적 번영과 문예부흥이 따랐다는 사실이 무슬림이 경제적 이익과 전리품을 추구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이슬람의 후기 역사에서, 추정대로 이러한 이득과 전리품이 동기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슬람

 

이 평화를 전쟁보다 더 좋아했고, 무슬림이 전리품 획득을 추구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적 사례가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이 기타 요인들과 더불어 현대 자본주의의 발흥을 이끌었다고 지적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고전적 논의가 있습니다.

 

 

 

진지한 사람이라면, 프로테스탄트가 경제적 번영을 위해 윤리를 발전시켰다거나, 현대 자본주의가 아직도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를 않습니다.

 

 

 

이슬람은 국제 관계에서 지나친 유화정책이나 침략을 공히 배제합니다. 이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평화를 어지럽히거나, 안보를 위협하거나, 평화정책을 악용하려는 자가 있다면, 즉시 방위 하고 이러한 모든 시도를 분쇄해야 합니다. 이슬람은 오직 이 경우에만 전쟁을 정당하게 봅니다.

 

이 경우라 할지라도 범위를 최소한으로 국한하고,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전쟁을 한다는 도덕적인 원칙을 따라야만 합니다.

 

 

 

이슬람에서 전쟁과 평화의 법은 윤리적이고 고유하며, 포괄적이고 철저합니다. 여기에서 전쟁과 평화 관련법을 다룰 이유는 없지만, 법학자나 윤리학자라면 연구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슬람은 침략전쟁을 정당시하지 않으며, 농작물, 동물, 집 등의 전쟁 외 객체는 파손하지 않도록 합니다. 이슬람은 비 전투원인 부녀자, 아이, 노약자의 살해를 허용하지 않으며, 전쟁포로의 고문이나 패자에 교리 강요를 금합니다.

 

세상에 부정불의와 침략이 존재하는 한, 이슬람의 현실적인 원칙에 의한 정당한 방어 조치에 불과한 것이 전쟁입니다. (꾸란 2:190 – 195, 216 – 218, 22:39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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