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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서 말하는 신이란 무엇일까?-2편

꾸란 언어와 비유는 신을 자신이 창조한 것과 비슷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꾸란 전체와 무함마드의 언행록에 그리고 이슬람 역사전체에 이러한 초월 개념이 적용되었습니다.

이슬람 주류사상가 모두, 심지어 철학자와 문학가까지도 같은 노선을 따랐습니다. 그들 모두 초월적 하나님이 신비롭고, 말로 형언할 수 없으며, 인간이 하나님의 본질을 알 수 없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와 힘, 자비와 사랑이 피조물과 매우 가깝게 있다는 인식과 믿음을 지닌 것 이였습니다.

 

꾸란 용어 중 일부에서는 언어적인 한계가 드러납니다. 이는 인간 언어가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며, 하나님의 섭리 모두들 표현하기가 어려우며, 하나님의 진정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신을 인식하는 꾸란 체계는 그 자체로서 꾸란의 진본 성을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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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과 그리스도교 성서는 형성과정에서부터 매우 다릅니다. 우선 꾸란은 처음 계시되던 때부터 선지자가 재가하고, 여러 사람이 교차 확인하며 기록했으며. 내용이 바뀌지 않도록 세심하게 보존하고 권위를 인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경전을 수집하고 경전을 만들어낸 과정과는 다릅니다. 무슬림은 하나님이 마지막 계시로서 꾸란을 보냈노라고 믿습니다.

 

초기 이슬람 자료에 의하면, 선지자가 살아 있을 당시 여러 사람이 외우면서 글로 옮긴 것이 꾸란 원전입니다. 알-파루키에 따르면, 무함마드의 말년에 꾸란 전체 혹은 일부를 외운 사람이 30,000명 정도 되었고 그 중 일부가 꾸란을 글로 옮기는데 기여했습니다.

무함마드가 자신의 임무를 시작할 때부터 꾸란의 신성한 본질과 타자 성을 의식했다는 사실은 역사적 자료로 검증되며, 서구 학자 역시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무함마드는 자신을 따르는 교우들이 꾸란을 암송할 수 있도록 꾸란 구절을 외우게 하는 일을 비교적 일찍부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지자 시대 이래 모든 세대에서 수백만 명의 무슬림이 꾸란 암기를 해왔습니다.

 

역사학자에 따르면, 대도시 메카에서는 상업적 환경으로 글쓰기 능력이 일반화되어 있었는데. 선지자 무함마드가 계시를 글로 옮기기 위해 서기를 두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널리 인정됩니다.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이주 후 서기들을 두었음은 기록으로도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슬람 학자들은 이런 사실과 여타 관련 전승을 감안할 때, 선지자의 생애 동안 어떤 형태로건 꾸란의 모든 내용을 문자로 작성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또한 선지자 무함마드가 꾸란의 각 장(수라 surah)을 정리하는 데 직접 관여했다고 만장 일치로 주장합니다. 무이르 Muir, 버튼 Burton, 스미스 Smith 등 많은 서구학자도 이 결론에 동의합니다. 크래그 Cragg 주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지자가 말한 것이 틀림 없이 꾸란에 있다는 사실은 조금도 의심여지가 없습니다.”

와트 Watt, 트리튼 Tritton, 깁 Gibb 같은 학자는 선지자 생시에 꾸란 일부만을 글로 옮겼다고 주장합니다. 와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꾸란 대부분이 무함마드의 생시에 어떤 형태로건 글로 쓰여졌다.”

 

이쯤에서 선지자 무함마드(632년 서거)를 승계한 아부 바크르 Abu Bakr(칼리프 재위 632–634)가 우마르 Umar의 조언을 듣고 글로 된 자료들을 책 한 권으로 모을 것을 명한 사실을 언급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부 바크르로부터 임무를 받아 수행한 사람은 선지자의 서기였던 자이드 이븐 타비트 Zayd ibn Thabit 이였습니다. 그는 꾸란의 사본들을 모아 자신의 기억과 대조, 검증했고(자이드 이븐 타비트는 ‘꾸란 전체를 암송하는 사람’ 즉 하피즈 hafiz 였다), 이외에도 다른 여러 방법으로 검증한 후 한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우마르를 계승한 우스만 Uthman(칼리프 재위 644-656) 은 자이드에게 메카 표준어에 맞춰 한 권의 원전으로 묶도록 명했습니다. 알-파루키에 따르면, 선지자가 떠난 후 비교적 짧은 기간인 12년 만에, 와트에 따르자면, 약 18년 만에 표준적이고 완전한 꾸란 정본이 공식 편찬되었고, 이슬람 제국의 각 대도시 전문 교사들에게 배포되었습니다.

 

그 이후 꾸란은 현재까지 온전히 같은 내용입니다. 존 버튼은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오직 하나의 꾸란 원전만이 존재해왔다. 무슬림이라면 보편적으로 꾸란 원전을 기본으로 할 때만 예배가 유효하다고 인정한다. 따라서 이 하나의 원전이 무슬림을 통합한다. …… 오늘날 우리가 손에 든 것은 무함마드의 무스하프 mushaf(무스하프는 글자 그대로는 책 두루마리, 상징적으로는 꾸란을 가르킨다)다.”

 

무슬림에게는 예외 없이 하나만의 원전이 존재합니다. 꾸란 보존은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꾸란에서 하나님은 꾸란을 보호할 것이라고 언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의심의 여지없는 말씀을 내려 보냈으니, 하나님은 그것을 (변조로부터) 필히 보호하리라.” (15:9)

 

하나님의 약속, 꾸란의 놀라운 본성과 고유함 덕분에 어떤 사람도 꾸란에서 어느 것을 빼거나 다른 무엇을 덧붙일 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무슬림에게 단 하나의 꾸란 원전이 남았고, 무슬림 모두에게 규범적 권위가 되었습니다.

 

꾸란은 일곱 가지의 방식으로 낭송(끼라아 qiraah)할 수가 있습니다.

 

선지자가 직접 일곱 가지 방식을 승인했는데, 모두 각 부족 언어전통에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무슬림이 낭송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방식들이 의미나 구조 혹은 문장 형식에서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트리튼 A. S. Tritto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꾸란을 읽는 방식에는 일곱 내지 열 가지 방식이 있다. 말하는 방법에 따른 문자의 발음 차이 혹은 일부 글자의 생략이나 동화 등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여러 다양한 차이가 기록되었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무시할 정도의 작은 차이다. 그리고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다.”

 

게다가 꾸란 언어이자 선지자의 언어 인 아랍어는 오늘날 수억 명이 모국어로서 쓰고 있는, 전 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입니다. 아랍어는 수천 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은 유일한 셈족 언어이며, 지난 14세기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은 유일한 언어이기도 합니다.

히티 P. Hitti에 따르면, 이런 현상이 꾸란 덕분이었습니다.

“꾸란은 아랍어를 일관되게 유지하게 했다. 그래서 모로코인은 아랍인이나 이라크인과 다른 방언을 사용하지만, 글을 쓸 때는 같은 문체로 쓴다.”

 

에스포지토 Esposito에 따르면,

“사실상 아랍어의 발전과 중심적 역할을 하고, 아랍어 문법, 어휘, 구문론의 발전에 기초를 제공한 것은 꾸란이었다.”

 

그리스도교 성서와는 달리 꾸란의 신도들은 꾸란이 하나님이 직접 말한 계시로 믿습니다. 꾸란은 무슬림에게 권위와 규범의 기준이어서, 무슬림들 사이에 꾸란의 해석차이가 생길 수 있겠으나, 꾸란 원전자체의 진본성, 진실성 혹은 권위가 의심받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역사를 통해 무슬림이 예외 없이 만장일치로 꾸란의 모든 부분, 즉 꾸란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수용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신앙생활을 아우르는 첫 번째 원칙을 꾸란에 두었고, 지켜야 할 법률 원천으로 생각했으며, 신앙과 종교문제에 관해서는 어떤 다른 권위도 대체하지 못하는 최고 권위로 받아들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슬람이 신을 인식하는 체계의 명료성, 직설성, 일관성, 불변성은 꾸란이 지닌 역사적 순수성, 진본성, 규범의 기준 본성에서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세 종교는 모두 이러한 신 개념을 열망해왔지만, 히브리 성서와 신약성서는 이에 합치되지 않았습니다. 신을 표현할 때, 육체적이고 의인화된 측면을 걸러내야 종교가 바로 설 수 있으며, 세 종교가 바라던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단순명료하고 위대한 신성 개념의 도움으로 소외된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은 간격을 메울 수 있고, 과학과 신앙 사이 간격 역시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좁힐 수는 있습니다.

 

오늘날 철학과 과학계에서 신으로 향해 가는 길을 믿음으로 연다는 말이 허황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리조나 주립대학 소속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폴 찰스 윌리엄 데이비스 Paul Charles William Davies(1946년~)는 우주에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대해 강력히 반대합니다.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비록 많은 형이상학 이론과 유신론이 억지스럽고 유치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가 아무 이유 없이 존재한다는 생각보다는 일리가 있다. …… 우리의 존재에는 이유가 있다.”

 

데이비스는 신을 유치하게 인간 모습으로 상상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그 대신 신은 초월적 보편정신, 최고의 총체적 개념, 존재 그 자체, 창조의 힘, 심지어 수학 원리 등으로 생각해보라 권합니다. 시공을 초월하고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신만이 자연현상에 진정한 의미와 정합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서 종교가 과학자의 신성 개념을 따라야 한다거나 계시가 과학으로 종속되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강조하려는 것은 조악한 의인화나 신체주의 신 개념이야말로 현대의 지성과 하나님께로 향한 신앙 사이에 놓인 장애물이라는 것입니다. 의인화 개념은 좋게 말하더라도 종교와 신의 권위를 약화시켰고, 나쁘게 말한다면 종교를 말살했습니다.

 

인류지성은 인간인 신 혹은 인간처럼 보이는 신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숭배하는 대상은 적어도 인간이 통제 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우주보다 더 위대한 무엇이어야만 합니다. 어쩌면 의인화한 신의 모습이야말로 현대 무신론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일 것입니다. 종교의식과 지성적 사고 사이 간극은 초월적 신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상당히 좁힐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의 어려움은 신앙 자체보다는 의인화된 신 개념 때문이며, 이는 인간지성에 호소력이 전혀 없으며, 생동감이나 초월 없는 유약한 모습으로 비칠 따름입니다. 여기에 해결책이 있으니, 바로 꾸란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이다.

 

꾸란은 하나님의 신성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제시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권위를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꾸란은 전 세계적으로 초월적 신성과 종교를 부활시키는 데 있어 히브리 성서나 신약성서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꾸란은 신의 개방성, 통일성, 유일성, 초월성을 가장 거룩한 본연의미로 강조하고, 신을 의인화하는 묘사를 일관되게 거부하며, 평범한 보통 사람뿐 아니라 최고의 지성과도 신과 신앙을 두고 대화합니다.

 

복합적 무신철학과 종교를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경향을 이겨낸 이슬람 신앙의 활력을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꾸란입니다. 우주와 그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하고 지배하는, 장엄하고, 유일하며, 홀로 존재하고, 하나인 하나님으로 복원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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