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생활

Originally posted 2019-05-15 11:22:35.

 

  1. 통치자의 직위는 공공의 신탁인 바, 국민의 일반적 동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위임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국가 주인이심으로 하나님을 대표하는 이는 당연히 하나님께 충성해야만 하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는 공익에 이바지하고 국민은 물론 하나님께 대한 국가의 모든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당위입니다. 또한, 이른바 종교적・인종적 소수 권리를 보장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정치 생활

정치 생활

인류애 측면에서, 이러한 이슬람의 통치 방식이 잘 이해되지 못하고 곡해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이슬람은 소수를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소수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합니다. 준법 시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 받으며, 책임 있는 국민으로서 의무와 특권을 똑같이 공유합니다.

법에 따르고, 권리를 행사하되 그에 따르는 책임을 이행하는 한, 무슬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위가 격하되거나 이등국민으로 전락하지를 않습니다.

이를테면 국가 존속과 자신의 안전, 복지의 대가로 무슬림과 같이 구빈세를 내려 한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슬람 형식인 구빈세를 내는 것이 어색하거나, 무슬림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형태의 세금으로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수자는 무슬림에겐 해당하지 않는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소수자 역시, 국가에 기여한 대가로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혼인, 이혼, 음식, 상속 등의 개인 생활에서 이슬람법에 따르고 싶다면, 그 희망을 인정하고 권리를 존중해야 합니다.

반면, 자신의 종교 교리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자유가 있으며, 누구도 권리 행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사적인 혹은 감정의 문제는 자신이 선택한 가르침에 의지할 수 있고, 공적 규정에 의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익과 공공 사업에 관해서는 국가의 법, 즉 하나님의 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안전과 보호의 권리가 다른 국민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천국의 꿈은 아닙니다.

이는 꾸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 가르침이며 이슬람 역사 기록입니다.

예를 들자면, 무함마드 이후 2대 칼리프인 우마르 이븐 알-카땁이 어떤 곳을 지나다가 가엾은 처지에 있는 나이든 유대인을 보았습니다. 우마르는 사정을 물어보고 딱한 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마르는 안타까운 말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능력이 있을 때, 우리는 그대에게서 공물을 징수했다. 그런데 이제 돌보는 이 없이 버려졌으니, 진정 그대에게 불공평하였도다!”

말을 마친 후 우마르는 노인에게 연금을 정기적으로 주라 명했고, 그 명은 즉각 시행되었습니다.

우마르를 비롯한 통치자들은 무함마드가 이룬 정치적 이상을 수용했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에 관한 꾸란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금하지 않으셨노라, 신앙을 침범하지 않고, 주거지를 침략하지 않는 한, 친절하고 공정하게 대할 것이니, 진정 하나님은 공정한 이를 사랑 하 시노라.

하나님께서 그대를 금하셨노라, 신앙을 침범하고, 주거지를 침략하며, 남을 충동하여 이를 조장함에 가까이하지 말 것이니, 그들은 사악하도다.” (꾸란 60장 8 – 9절)

정치적 방법론적인 원리로 관용이란 거짓이 밝혀질 때까지 현재를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식론과도 연관되며, 권장되지 않는 것들이 정해질 때까지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원리인 윤리와도 연관 지어져 있습니다.

거짓이 밝혀질 때까지 현재를 수용하는 것을 ‘시간’이라 하고, 정해질 때까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용이함’이라고 부릅니다.

이 둘은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보수주의로부터 무슬림을 보호 해줍니다. 이 두 요소는 인간이 더 나은 인생과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또한, 인간이 꼼꼼한 사리분별과 이성, 건설적인 노력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다루도록 북돋는 한편, 그로 인해 경험과 인생을 풍요롭게 하며,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킵니다.

이슬람 문명에서 방법론적 원리로 관용이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직접 선택하시어 ‘하나님 이외에는 어떠한 신도 없다’는 점과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도록 가르치며, 악과 그 악 저주에 대한 경고를 보냄으로써, 인간을 버려두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것 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관용은 모든 인간이 참된 종교를 알고 하나님의 의지와 말씀을 인지할 수 있는 공통 의식을 타고났음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관용은, 종교 다양성이 역사적 사건과 시간과 공간의 다양한 조건, 편견, 열정, 관심사로부터 비롯됐다는 신념입니다.

종교적 다양성 너머에는 여러 종교를 지지하게 만든 문화 태동 이전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믿던, 하나님에 대한 초기 종교, 유일신교가 자리매김합니다.

 

관용은 무슬림에게 태고부터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가르친 자취, 종교적 역사를 발견하고 책임감을 느끼고 연구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시대, 여러 장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 선지자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종교에 있어 관용이란 종교 간 대립과 상호비난에서 벗어나 세상 시작부터 내려진 초기 계시와 인간 역사를 구분해 종교 발전을 위한 협력적 학술연구를 할 수 있는 기본이 됩니다.

중요한 윤리 요소인 ‘용이함’이란 무슬림이 생명을 경시하지 않도록 하며, 인간의 생애에 닥치는 온갖 비극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건강,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긍정적 시각을 유지하도록 해준다.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고난 속에 쉬움, 용이함을 마련해두었노라”고 했습니다.

법학자로 하여금 매 주장을 시험하고 판결 내리기 전에 이를 분명히 하고, 선과 악을 판결 내리기 전에 실험으로 하나님의 이 말씀에 대치되지를 않는지 잘 살피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시간’과 ‘용이함’, 이 두 요소는 도덕의 형이상학적 원칙으로, ‘하나님의 유일성’에서 직결되어 비롯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스스로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자유롭게 유익한 행동과 긍정적인 활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슬람에서는 이것을 인간 존재이유로 여깁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어떠한 신도 없노라”고 증언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생명체에 생명을 불어넣고 만물을 만드는 궁극적인 존재며 모든 것의 궁극, 즉 시작이자 끝임을 믿는 것입니다.

자유의지에 기반을 둔 인간의 의지로 이해하고 확신하여 이 증언을 하는 것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 사건이, 자연 현상이나 사회 현상, 또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목적을 갖고 우리를 창조하셨음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이는 한 사람의 또 다른 본질이 되어 사라지지 않으며. 그리하여 그 사람은 매 순간 이 깨달음의 그림자 아래 살아갑니다. 또한, 모든 사건과 사물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의지와 섭리를 인지하여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계획을 따릅니다.

자연을 관찰하고 원리를 밝히는 것이 자연과학입니다. 신성한 자연계획은 하나님이 하사한 불변 법칙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과 사회에서 하나님의 신성한 계획을 관찰하는 것은 인류애와 사회과학을 추구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온 우주가 하나님의 말씀이자 의지인 자연법칙을 펼치고 이행하는 곳이라면, 무슬림에게 우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실황 무대인 셈입니다.

무대 소품, 무대에 등장하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무대 그 자체도 이러한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일체화란,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 근원이며 다른 어떤 것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필연적으로 ‘하나님 유일성’은 항구 불변의 자연법칙을 계획하는 하나님께 어떠한 것도 영향력을 가할 수 없게 만듭니다. 자연에서 본연 자주성이 아닌 대리자를 통한 요술이나 주술 같은 심령의 힘, 또는 자연의 진행 과정에 대한 무작위의 마법적 작용으로서 간섭 따위를 부정하는 것 입이다.

따라서 ‘하나님 유일성’은 인간이 자연 영역을 만들고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반한다고 여기노라는 것이며. 이것이 자연과학의 절대적 우선 조건입니다.

‘하나님 유일성’은 원시종교 경배 대상인 자연과 하나님을 분리했습니다. 이로 인해 종교의 형식, 문명, 자연 과학에 새로운 세계관을 부여해 영향을 미치고 발전하게 하였습니다. 자연을 경배대상이 아닌 하나님 피조물로 여기고 객관적 연구 대상으로 보는 토대를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 유일성’은 자연과학의 적이자 문명의 적인 미신이나 신화에 반대합니다. 모든 인과관계를 불가사의한 힘에서 온 것이 아닌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섭리로 되돌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자연 현상과 사물을 연속된 것으로 파악해 인과관계를 관찰할 수 있는 능력, 즉 인과관계에 대한 인지력을 갖출 수 있으며, 이 인지력이 외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오로지 하나님 섭리로 향하게끔 합니다.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는 자연 현상을 실증적인, 실험과 관찰로 인과관계 연결고리를 찾는 과학적 방법론과 태도를 견지하도록 했습니다. 모방할 수 없는 자연법칙이 하나님 섭리라는 것은 하나님이 다양한 원리를 통해 자연 현상을 작동시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설계이자 섭리는 항상 같은 인과관계를 가가집니다.

이러한 불변성을 관찰해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 과학의 기본 토대입니다. 과학이란 이렇게 자연 속에서 반복되는 현상을 찾는 것입니다.

자연 현상에서 밝혀진 인과관계법칙은 다른 요소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이런 반복성 발견이 자연법칙 발견입니다. 또 인간이 자연을 공학적으로 활용하고 통제하는데 필수적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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