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Originally posted 2019-05-28 11:03:21.

꾸란은 그 특성으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개인적인 것과 전체적인 것 사이에서 중용과 조화를 들 수 있습니다. 꾸란은 현실에서 삶과 인간에게 필요로 하는 합당한 주의를 기울이며, 인간자신이 존재하는 숭고한 목적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꾸란은 이런 중용을 추구하는 방법 때문에 무슬림을 중용의 공동체(꾸란 2:143)라고 부르며, 이러한 중용태도를 가질 때 가장 훌륭한 공동체라고 봅니다.

그들은 의로움을 지켜 불의와 싸우며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꾸란 3:110)

중용

중용

꾸란 지혜는 3가지 주요한 측면, 즉 내적, 외적, 상향적 측면에서 작용합니다. 꾸란에서 내적 지혜는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정신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스며듭니다. 이는 개인을 내면으로부터 건전하게 만드는데 목표를 둡니다. 이러한 내적 침투는 법적 혹은 윤리적 제도와 다르며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것입니다.

꾸란은 하나님 이름으로서 말하며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일임합니다.

외적 작용은 각계 각층을 포괄하며, 가장 개인 문제로부터 복잡한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인간사모든 전 분야 원칙을 망라합니다.

꾸란은 법 제도나 윤리 규범에도 알려져 있지 않은 분야, 종교 교리가 도달하기 어려운 분야까지 모두 다룹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인간사를 다루되 거기에 하나님의 향기와 윤리적인 색채를 곁들인다는 사실입니다.

꾸란은 매사에서 하나님 존재를 의식하며, 하나님께서 안내의 원천이자 모든 일에 대한 궁극적 목표로 합니다. 꾸란은 인간의 영적 지침, 법 제도, 윤리 규범이며 무엇보다도 생활 양식입니다.

상향적 작용에서 꾸란은 더할 수 없이 높고 유일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만사는 우주 위 하나님 존재에게 초점 맞추어 하나님을 통하여 보아야만 합니다. 인간이란 하나님께 속한 광대한 영역에 있는 일시적 수탁자에 불과하며, 인간을 창조한 목적이란 오직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경배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은둔이나 현실 도피를 권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뛰어난 덕성을 지상에서 올바로 구현하라는 하나님 초대입니다

꾸란이 상향적 관점이 하나님께 향할 때, 이는 곧 인간 앞에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고, 숭고한 윤리의 기준으로 인도하며, 평화와 선의 영원한 원천을 주지하게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궁극적 목표라고 깨닫는 것은 인간의 사고와 종교 교리의 대중적인 경향에 역행하는 혁명입니다.

이 혁명 목적이란 마음을 의심에서, 영혼을 죄에서, 양심을 속박에서 해방하는 데에 있습니다.

꾸란 지혜는 모든 측면이 중요하기에, 육체를 죄악시하거나 괴롭히지 않으며, 영혼을 등한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간화하거나 인간을 신격화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창조 계획 속에 모든 것이 제자리에 세심하게 놓여집니다. 행위와 대가, 수단과 결과 사이에는 비례 관계가 있습니다.

중립은 중용이랑도 다릅니다. 꾸란 지혜는 입장을 정하지 않는 중립이 아닙니다. 조화로운 판단을 하며 여러 요구를 합니다. 올바른 인식과 이해력을 지닌 모든 사람들은 그 요구를 기꺼이 환영합니다.

꾸란 지혜는 생각에 진실성을, 행동에 경건성을, 목적에 통일성을, 의도에 선량함을 요구합니다.

“이 책은, 의심할 바 없이, 경외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로다.” (꾸란 2장 2절)

“그대에게 계시된 이 책은, 전 인류를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향하게 하기 위함이로다.”(꾸란 14장 1절)

우주는 합목적적 창조물입니다. 모든 것은 창조주의 설계에 따라, 원리를 갖고 운행, 운동합니다. 세상은 의미 없이 재미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어쩌다가 우연히 생긴 것도 아니며, 완벽한 운행 원리로 창조되었습니다. 이세상 모든 것은 고유의 가치를 갖고 있으며 우주 운행의 원리, 고유의 물리법칙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은 창조주의 질서정연한 원리로 움직이는 ‘우주’이지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혼돈’ 상태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안에 창조주의 의지와 섭리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창조주 의지이자 섭리는 모든 자연법칙에 담겨 있습니다. 온갖 사물은 각자 고유성질을 갖도록 만들어졌으며 인간을 제외한 어떤 피조물이라도 창조주 설계원리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거나 운동하지를 않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창조주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유의지를 가진 피조물입니다.

인간에게 부여 된 신체적・정신적 기능이란 자연에 속한 일부로서. 엄밀히 말해 다른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자연 법칙에서 벗어 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신적 기능에서는, 다시 말해 이성과 자유의지 판단에 따른 도덕적 행동이라면 일반적인 자연법칙을 벗어난 것 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 자유의지에 따라 스스로 결정하여 창조주 섭리대로 행동하는 것은 자연법칙을 아무런 의지 없이 그대로 따르는 다른 피조물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가치입니다.

본능적인 행위는 기본적 생명유지나 생리적 필요에 의한 행위이지만 자유의지에 기반을 둔 인간 선택은 인간으로 하여금 도덕적인 가치에 이르게끔 합니다.

창조주께서 비친 도덕적인 의지 즉, 창조주가 인간에게 직접 내린 계명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실리적 유용함을 갖고 있습니다.

실용적이며 유용한 가치를 지킨다고 해서 질적으로 다른 피조물과 도덕적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창조주가 보낸 도덕적인 의지나 어떤 계명을 지키지 않겠노라는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계명을 지킨다는 것 그것이 바로 도덕을 특별하게 고귀 한 것으로, 인간을 다른 피조물보다 질적 우위에 있는 존재로 만듭니다.

이세상 모든 것은 창조주께서 만드셨으니 창조주님 섭리에 따른 고유 성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몸은 이세상에 있을지언정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방관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고 피조물들은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창조주가 부여한 고유의 성질과 의미를 잃을 겁니다. 이러한 전제 조건이 없다면 책임, 즉 도덕적인 사명은 사라질 테고 그렇게 됨으로써 창조주가 계획 한 의도와 권능은 파괴될 것입니다.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신성함은, 천지창조의 날부터 심판의 날에 이르는 세월 속에서, 피조물에 의해 반드시 드러납니다.

도덕적 행위 주체로서 인간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 사회, 자연,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만 할 것이며 자신 주변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통해 창조주님 법칙과 말씀을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두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

도덕적 행위 대상으로서 인간은 자기 자신, 동료, 주변의 도덕적 행위를 수용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도덕이나 대상과 상호작용이 없는 도덕이라면 그 효용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을 테며. 도덕적 행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곧 인간이 지닌 도덕적 역량을 뜻할 것입니다.

도덕을 수용하는 능력이 없는 한 인간에게 주어진 도덕적인 행위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며, 도덕으로 가치를 갖는 인간 목적인 창조주의 계획 또한, 무너질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세상 방관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유일하실 뿐 아니라 이루신 업적마다 그 의미가 있노라는 전제하에서 창조에는 목적이 있으므로 그 창조 목적에 순응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창조 목적에 이세상을 적용 함으로서 인간이 그 자신을 둘러 싼 세상의 구조, 상태, 관계를 변화시키고 인류 목적인 창조주의 의지를 구현하고, 구체화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육체적・정신적・영적 본질을 포함한 창조의 진실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시공간의 절대적 존재인 창조주의 법칙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만약 인간에게 창조주께서 준비 한 의도와 법칙에 순응하여 자기 자신과 사회, 환경을 바꿔야 할 의무를 지니고 의무를 수행할 역량이 있다면, 또, 도덕 대상으로서 도덕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여기에는 필수적으로 책임이 따를 것 입니다.

도덕적인 의무란 책임 혹 행위에 대한 심판 없이는 판단 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인간에게 부여 된 책임이 사라져버린 까닭에 어느 누구도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유일성’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 스스로가 자기 행실을 통해 도덕적으로 가치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최고 그리고 최후 심판을 통해 인간이 한 행위가 평가되리라고 경고하셨으니, 인간 행위에 대한 기록은 선행으로 인해 보상받을 것이고, 악행으로 인해 처벌받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 유일성’은 이 땅을 개척하도록 인간을 보냈노라 단언합니다. 즉 인간이 이 땅을 개간하여 과일을 먹고 이 땅의 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즐기며 지구와 자기 자신을 번영시킬 수 있도록 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순수하고 선한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인간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져야 할 세상을 보는 태도, 긍정적 세계관입니다.

태양과 달을 포함한 세상 만물은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모든 피조물은 인간이 윤리적 행동을 수행하는 무대이자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더 고차원의 신성한 의지 인, 하나님 말씀을 실천합니다.

인간에게는 자기 본능과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모든 이가 이러한 기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전 인류의 모두를 각자 타고난 재능을 활용해 가능한 한 최고의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인간에게는 온 지구를 비옥한 토지와 아름다운 환경으로 바꾸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이 모두는 균형 잘 잡힌 중용으로서 이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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