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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에 대한 생각-3편

히잡의 다양한 의미

 

히잡 착용의 사회적 복합성은 서구의 보편적인 믿음인 “히잡(히잡 종류가 하나인양)은 무슬림 여성의 억압을 상징한다.”라는 시선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서구세계에서 통용되는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들에 대한 깊은 오해, 즉 그들이 강요와 강압에 의해 히잡을 착용하며 이는 ‘억압의 증표’라는 주장을 타파하는 것 입니다.

 

히잡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에 중점을 두고 독자들로 하여금 히잡에 대한 단 하나의 해석은 맞지 않지 않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서양에서 히잡을 쓰는 여성들에 대해 존재하는 단 한가지의 해석, 즉 그들은 억압을 기꺼이 수용한다는 시선에서 비롯된 불의를 조명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와 퀘벡에서 여학생들이 히잡을 이유로 퇴학당하고 무슬림 여성들은 차별과 희롱 등에 의해 고통 받는다.) 다른 나라에서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분석합니다.

 

이는 개인과 상황 특성에 따라 변화하는 히잡의 여러 의미들을 고찰하기 위해서입니다. 히잡 착용에 대한 주요 저서들 중 일곱 개의 핵심 주제를 종합해보면 각 상황에 따른 여성들의 히잡 착용이 가지는 지위, 개인의 정체성 발산, 관습 및 법 제도와 같은 다양한 상황적 의미를 가집니다. 자연히 위에 언급된 테마 중 겹치는 부분이 있고 한 여성에게 한 가지 이상의 주제가 중첩된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문단들에서는 이러한 연구들의 주제들을 소개하고 현대 서구 미디어가 히잡에 부여하는 의미를 살펴봅니다.

 

이 과정은 서구 미디어에서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히잡에 대한 이미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정적이며 여성의 관점에서 보는 것과는 관계 없음을 시사합니다.

 

가리는 이유

(1) 혁명시위: 1950년대 알제리 독립혁명과 1970년대 이란 독립투쟁 당시 히잡이나 베일을 착용하지 않던 여성들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히잡/차도르를 착용하였습니다. 히잡의 착용은 제국주의 및 식민지배에 대한 반대의사와 서구 의지에 공감하는 엘리트정권 및 그 정권이 대표하는 모든 것에 대한 반감을 상징하였습니다.

 

(2) 정치적 시위: 여성들은 엘리트주의 서구화 정책들과 서양 신 제국주의 지배에 대항하는 정치적 시위의 하나로 히잡을 착용하였습니다. 현재의 정치적 상황, 정책 및 서구에 의한 상업적, 기술적, 정치적, 사회적 침략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 위한 행위였습니다.

 

(3) 종교적 이유: 서구화와 세속화에 대항하는 정치적 시위의 한 부분을 차지한 움직임은 이슬람이 서구화와 세속화를 대신하여 긍정적인 대안 정치, 사회 및 경제 시스템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범세계적인 ‘이슬람 드레스 코드’ 표방 움직임의 일부로 여성들은 히잡을 착용하였습니다.

 

(3.1) 사회개혁: 서구화와 세속화에 대항하고 이슬람을 대안으로 수용하는 태도에서 더 나아가 히잡은 착용하는 여성들로 하여금 사회발전에 능동적이고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사회개혁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히잡은 사회계급의 완화를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윌리엄스는 이집트 여성들이 자신들이 히잡을 착용하는 이류로 사회를 치유하고 분열로부터 막기 위함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4) 공적인 위치에 대한 욕구: 최근 히잡을 착용하기 시작한 여성들이 모두 종교적 신념에 의해 히잡 착용을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히잡 착용을 시작한 여성들(일부는 예배조차 드리지 않습니다.)은 히잡을 착용하는 것이 공적인 위치로서의 진출을 목적하여 구직활동, 지위확보 및 남성 우월주의에 의한 피해 감소 등에 효과를 보인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5) 개인 정체성의 표현: 특히, 서양에 거주하는 무슬림 여성들 사이에서 히잡 착용의 이유는 개인 정체성에 대한 표현을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아시아계 영국 2세대인 나디아의 경우에도 16살에 처음 히잡을 착용하기 시작하였으며, “히잡을 착용하는 것이 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고 정체성의 증표와 같은 역할 및 나의 정체성에 종교라는 요소가 중요하다는 신호가 되어준다.”고 했습니다.

 

(6) 관습: 다수의 무슬림 여성들은 가족과 사회 관습을 존중하는 의미로 히잡을 착용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교육학 학사를 취득한 35세의 사우디 출신 교사는 “나는 신념에 의해 베일을 착용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신념이란 어떤 배경과 기초 믿음에 의해 형성된 것이냐?”라는 물음에 그녀는 “나의 전통과 관습에 대한 애착이 있다. 베일을 쓰는 것은 사우디 여성으로서 정체성의 일부에 해당한다. 베일을 착용하는 것은 그 사람이 사우디 문화의 규범과 가치를 따르고 행동한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렇기에 나의 딸에게도 베일을 착용하라고 가르칠 것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7) 국가의 법적 요구: 히잡 착용 및 가리는 행위는 이란에서 1979년 혁명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998년 탈레반 정권진출 이후 법적으로 요구가 되고 있습니다.

 

히잡의 의미: 서구 미디어의 관점

히잡을 착용하는 것의 동기와 의미에 대한 사회적 복잡성과 보편적인 서구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히잡 착용의 동기 및 의미간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서구 미디어 관점에서의 히잡은 보통 그리고 대부분 억압의 상징 및 테러, 폭력, 잔혹성, 퇴보 등의 이슬람 관련 공포를 상징합니다. 이러한 논리는 이미 형성된 이미지에 히잡이라는 요소를 끼워 맞추는 것입니다.

 

히잡이 동양을 대변하였던 식민통치 시대와 같이 1990년대에 “히잡”이라는 단어는 이슬람 근본주의 공포의 화신이 되었습니다. 신문기사들은 앞 다투어 “히잡에 가려진 이슬람의 위협”, “신앙의 행위인가 히잡에 쌓인 사외에 대한 위협인가?” “장관의 발표와 같이 무슬림 히잡과 프랑스 학교와의 조화에 대한 위협”, “새로운 법: 히잡을 착용하고 살아남기”. “히잡에 갇힌 여성들”과 같은 헤드라인을 쏟아 내었습니다.

 

이렇듯 히잡은 이슬람에서 여성들 열등함과 함께 연결이 되고 하였습니다. 히잡 착용이 “여성 억압에 대한 드러난 징표”로 간주되며 히잡 착용을 원치 않는 여성들에게 협박 및 폭력행사를 이용해 강요된다 여겨집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무슬림 국가에서 많은 여성들은 히잡을 자유 의사에 의해 신념을 가지고 착용합니다.

 

스크로진, 굿윈, 브룩스와 같은 서양 작가들의 글속에서 이러한 여성들은 바보 같고 무지하며 독특하거나 최악의 경우 이슬람주의 이념의 결정체로 남성들과 다를 것 없이 반 여성 이념을 대변하는 주범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히잡 착용에 관한 학술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굿윈의 연구에서 “극단주의”에 쉽게 현혹되는 어리고 사회 및 경제적 유혹에 약한 이미지로 그려집니다.

 

이들 대부분은 물론 위에 언급된 학자들의 인터뷰에서 빗겨 갔습니다. 브룩스의 손에 탄생한 이미지 속의 그들은 나라를 퇴보하게 만드는 암흑 같은 미래의 전조들이었습니다. 학술연구 그 어느 곳에서도 메이스레드에 의해 관찰된 카이로 서민층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 중인 히잡 착용 운동이 이슬람 근본주의 움직임과 관계가 없다는 관점의 뉘앙스나 실마리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주허르와 러그의 사회경제적 관점이 아닌 신앙심과 경건함에 중점을 둔 시각이나 브레너의 눈에 비친 자반 여성들의 선진적이며 이성적이고 현대적인 사회발전을 위한 마음가짐 다시 잡기와 같은 시각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 장

메르니시와 히잡에 대한 담론

 

모로코 출신 페미니스트 파미나 레르시니의 두 저작, “베일의 뒤에”와 “베일과 남성 엘리트”는 서양에서의 히잡의 의미에 대한 논의 자료로 널리 통용이 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책에서 메르니시는 히잡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부당한 권력의 상징이라 주장합니다.

 

나는 히잡이 강압적이라는 편견을 깨고자 하기에 메르니시의 주장들에 대한 비판적인 반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메르니시와 방법론

 

파티마 메르니시가 모로코에서 자라면서 경험한 듯한 개인적 트라우마 들이 그녀의 작품 중심에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메르니시의 자서전에 적힌 일화에는 그녀와 히잡의 관계를 매우 잘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홉 살이 체 되지 않은 메르니시와 그녀의 사촌들은 “어두운 머리 색과 검은 눈동자 색을 싫어하는 친 히틀러 세력이 어두운 머리 색을 가진 인종을 볼 때 마다 그 지역에 폭격을 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머리 색을 염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메르니시는 어머니의 히잡을 두르기 시작했지만 이내 화난 어머니에 의해 히잡은 찢어졌습니다. 그녀 어머니는 “다시 한 번 머리를 가리기만 해봐라!”라고 소리쳤습니다. “어머니는 히잡에 대항하여 싸우는 중인데 네가 히잡을 쓰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니? 히틀러의 세력이 너를 쫓아오더라도 절대로 머리를 가리지 않은 채로 대항해야 한다.”고 그녀 어머니는 가르쳤습니다. “머리를 가리고 숨는 것은 그저 여성들을 쉬운 공격대상으로 만들 뿐이야. 너희 할머니와 엄마는 이미 머리 가리는 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단다. 나는 내 딸들이 얼굴을 꼿꼿하게 세우고 하나님 행성에서 별들을 우러러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이런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과연 히잡 착용에 대해 불확실한 또는 부정적이지 않은 태도를 확립할 수 있었을까? 과연 어린 여성에게 퇴보하는 행위나 반민족적으로 보이지 않고 히잡을 착용하기로 결정할 자유가 있었을까? 메르니시는 분명 이러한 기억들로 인한 트라우마에 아직까지 시달리고 있으며 그녀 목적은 이런 고통에 대한 원인규명과 치유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히잡이라는 시스템을 과연 누가 증오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녀와 같은 계층의 문맹 여성들이 외출을 할 때 니깝을 착용하는 것은 그녀의 머릿속에선 히잡 및 니깝은 여성들에 대한 억압의 상징이라는 사실이 당연시되어 보였습니다.

 

문제는 메르니시가 모로코의 제도 안에서 자신이 경험한 히잡 착용에 대한 경험적 시각으로서 보편적인 히잡 착용의 경험과 히잡을 착용하는 실제 이유와 동일시 한다는 점입니다. 뒤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메르니시는 히잡 착용에 관한 다양한 이슬람적 행위의 존재 및 다양한 이슬람적 의미의 히잡에 관한 담론의 존재를 파악하는데 실패 하였습니다.

 

그녀는 20세기 모로코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체계를 7세기 아랍의 시스템과 동일시하여 접근하는 역사적으로 어긋나는 접근법을 택했습니다. 그녀는 20세기 모로코에서 벌어진 삶 들이 무함마드 선지자가 본 긍정적 이슬람의 이상적 상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그녀는 모로코에서 벌어진 일 들을 무슬림 세계 전체에서 벌어진 일들과 동일시하며 무슬림 세계에서의 히잡의 의미에 대해 논합니다. 이는 마치 현재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의 시스템이 태초에 7세기에 발생한 무슬림 사회와 동일시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따라서 내가 메르니시 의견에 동의 할 수 없는 점은 크게 두 가지 이유입니다.

(1) 공간과 시대 배경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이슬람에 대한 의견차이를 반영하지 못한 역사적이지 못한 종교적 상징에 대한 접근, 그리고

(2) 히잡 착용에 관한 복합적이고 다양한 담론들을 인정하지 않은 좁은 시각 및 접근입니다.

 

히잡이 여성에 대한 이슬람의 억압을 상징한다는 부정적인 편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연 이슬람이 메르니시가 말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적대적인 사회를 요구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여성들에게 우호적인 대안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나는 메르니시의 여성에 대한 이슬람의 시선에 관한 주장들이 꾸란과 하디스에 대해 모순으로 들어나 게 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메르니시에 대한 나의 주장은 무슬림 사회가 여성에 대한 강압적인 행동이나 담론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나의 주장은 일반적인 이슬람 및 규범적인 이슬람에 대한 것입니다. 꾸란의 비전에 대한 해석 중 여성에게 우호적이라는 해석은 메르니시의 관점과 여타 여성들에게 꾸란이 적대적이라는 해석에 모두 대응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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