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란의 역동성

Originally posted 2020-02-12 12:03:09.

꾸란 역동성

 

꾸란의 지혜가 지닌 주요 특성에는 정태적(靜態的)이거나 무미건조하지 않다는 점이 있습니다.

꾸란의 지혜는 정신을 자극하고 활기를 불어 넣는 역동적인 지혜입니다. 꾸란의 지혜 속에는

사람을 고무하는 역동성과 역사적인 증거로 입증되는 활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안내를 알리기 시작 할 당시, 그가 가진 유일한 힘은 꾸란 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유일한 지혜는 꾸란의 지혜 였습니다. 꾸란의 역동성은 실로 막강하여 저항 할 수 없습니다. 가장 역동적인 인물의 가장 결정적인 논술과 언변도 꾸란의 역동적인 지혜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습니다.

 

하나님은 꾸란을 가리켜 루흐 Rooh, 즉 영과 생명, 하나님의 종복 들을 올바로 인도하는 빛 (꾸란 42:52)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꾸란을 산으로 보냈더라면, 그 산이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경외를 봤을 것이니,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함 이로다.” (꾸란 59장 21절)

 

여기에서 핵심은 영과 빛으로 꾸란이 삶의 근원이며 영혼을 자극하고 안내의 빛을 비추어서 뚜렷하고 변함없는 목표로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꾸란이 말하는 영적 역동성입니다.

 

실천성

꾸란의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성이라면 그 실천 성 입니다. 꾸란은 현실성이 없는 희망적 관측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꾸란 가르침은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거나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의 낙관으로 표류하지도 않습니다. 꾸란은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입장에서 가능한 인물이 되도록 권합니다.

 

꾸란은 인간이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저주를 받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무력하고 가망 없는 존재라 낙인 찍는 것이 아닌, 인간을 숭고하고, 명예롭고, 위엄 있는 존재로 묘사합니다.

꾸란의 가르침이 지닌 실천성은 무함마드와 무슬림 교우가 보인 모범을 수립했습니다. 꾸란의 접근 방법과 가르침은 인간의 전반적인 복지 실현을 목표로 하면서,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에 기반합니다.

 

중용

꾸란의 특성으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 사이의 중용과 조화를 들 수 있습니다.

꾸란은 현실의 삶과 인간의 필요에 합당 한 주의를 기울이며, 인간이 자신이 존재하는 숭고한 목적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꾸란은 이러한 중용의 방법 때문에 무슬림을 중용의 공동체(꾸란 2:143)로 부르고, 이러한 중용의 태도를 가질 때 가장 훌륭한 공동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의로움을 지키고 불의와 싸우며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꾸란 3:110)

 

꾸란의 지혜는 3가지 주요한 측면, 즉 내적, 외적, 상향적 측면에서 작용합니다. 꾸란의 내적 지혜는 마음 속 가장 깊은 곳, 정신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스며듭니다. 이는 개인을 내면으로부터 건전하게 만드는데 목표를 둡니다. 이러한 내적 침투는 법적 혹은 윤리적 제도와 다르며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것입니다.

 

꾸란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며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일임합니다.

외적 작용은 각계 각층을 포괄하며, 가장 개인 문제로부터 복잡한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인간사의 전 분야 원칙을 망라합니다. 꾸란은 법 제도나 윤리 규범에도 알려져 있지 않은 분야, 종교 교리가 도달하기 어려운 분야까지 모두 다룹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인간사를 다루되 거기에 하나님의 향기와 윤리적인 색채를 곁들인다는 사실입니다.

 

꾸란은 매사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며, 하나님을 안내의 원천이자 만사의 궁극적 목표로 합니다. 꾸란은 인간의 영적 지침, 법 제도, 윤리 규범이며 무엇보다도 생활 양식입니다.

상향적 작용에서 꾸란은 더할 수 없이 높고 유일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만사는 우주 위 하나님의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통하여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광대한 영역에 있는 일시적 수탁자에 불과하며,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경배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은둔이나 현실 도피를 권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뛰어난 덕성을 지상에서 올바로 구현하라는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꾸란이 상향적 관점이 하나님께 향할 때, 이는 곧 인간 앞에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고, 숭고한 윤리의 기준으로 인도하며, 평화와 선의 영원한 원천을 주지하게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궁극적 목표라고 깨닫는 것은 인간의 사고와 종교 교리의 대중적인 경향에 역행하는 혁명입니다. 이 혁명의 목적은 마음을 의심에서, 영혼을 죄에서, 양심을 속박에서 해방하는 데 있습니다.

 

꾸란의 지혜는 모든 측면이 중요하기에, 육체를 죄악시하거나 괴롭히지 않으며, 영혼을 등한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간화하거나 인간을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창조 계획 속에 모든 것이 제자리에 세심하게 놓여집니다. 행위와 대가, 수단과 결과 사이에는 비례 관계가 있습니다.

 

중립과 중용은 다릅니다. 꾸란의 지혜는 입장을 정하지 않는 중립이 아닙니다. 조화로운 판단을 하며 여러 요구를 합니다.

올바른 인식과 이해력을 지닌 모든 사람들은 그 요구를 기꺼이 환영합니다. 꾸란의 지혜는 생각에 진실성을, 행동에 경건성을, 목적에 통일성을, 의도에 선량함을 요구합니다.

“이 책은, 의심할 바 없이, 경외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로다.” (꾸란 2장 2절)

 

“그대에게 계시된 이 책은, 전 인류를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향하게 하기 위함이로다.” (꾸란 14장 1절)

 

꾸란의 세계관은 철저 하게 신 중심입니다. 존재론에 있어 어떤 것도 신과 동등하거나 맞설 수 없습니다. 신은 창조의 주인으로서, 모든 존재체계를 관장하는 초월적 타자로 남아 있습니다. 신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은 신의 피조물이며 존재의 위계에서 신보다 아래에 있습니다.

 

두 번째 영역은 신이 아닌 모든 다른 것으로 구성됩니다. 이 영역은 시공간과, 창조와, 경험질서가 지배합니다. 존재론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질서와 이 질서는 항상 서로가 이질적이었습니다. 창조주는 피조물과 결합하거나 섞이거나 혹은 피조물 모습으로 육화하기 위해 시공과 경험 영역으로 내려오지 않으며, 피조물은 존재론적으로 창조주와 통일되거나 섞이기 위해 위로 올라가지를 않습니다. 신은 철저하게 숭고하면서도 초월적인 타자로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꾸란에서 말하는 신의 통일성 개념입니다. 신의 통일성은 꾸란이 지닌 말씀의 핵심으로, 꾸란 전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 있습니다. 꾸란의 모든 개념, 사상, 관점은 바로 신의 유일성, 통일성, 초월성에 기반해 언급하고 묘사하며 설명합니다.

인류로 하여금 신과 의미 있고 바른 관계를 세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책이 꾸란입니다. 꾸란에는 전능한 신의 유일성과 통일성을 강조하는 구절이 너무나도 많아서, 설사 꾸란을 대충 설렁설렁 읽는 독자라 할지라도 쉽게 이를 알아볼 수 있을 것 입니다.

 

꾸란의 일신론 개념은 모호하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혼란스럽지도 모순적이지도 않습니다. 단어의 정의에서부터 일신론적이고 신 중심입니다. 긍정과 부정이 명확하고 합리적이며 규범적이고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꾸란의 일신교 개념은 단지 일신숭배 혹은 신의 존재나 단일성 확인으로 시작하지를 않습니다. 단일하고 유일한 하나님 외 모든 신성이나 신적 개념, 종류, 사상, 이해에 대한 환상을 부정하면서 비로서 시작합니다.

 

꾸란의 이슬람 신앙은 “하나님 이외에는 신이 없다.” 즉 신앙 선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꾸란 전체가 이 문구의 해설 혹은 확대 본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선언에서 ‘신이 없다’라는 부분은 일체의 거짓 신 존재를 부정하고, 잘못된 숭배나 예배 그리고 거짓 신에 의존하는 생각을 비판합니다. 신앙 선서는 근본적으로 초월적 일신론에 헌신함을 의미하며. 또, 다른 신이나 어떤 숭배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언합니다. 확실한 ‘아니오’라는 말을 통해서 다른 모든 신성, 신격, 다신론 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앞서 부정한 모든 것은 마침내 ‘하나님’에서 회복됩니다. 이는 하나님, 진실한 실체 외에는 어떤 실체도 신도, 존재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꾸란은 신의 통일성, 독자성, 초월성을 반복 강조하면서, 동시에 모든 형태의 우상숭배, 삼신숭배,다신 관 등을 강력하게 부정합니다. 꾸란에 따르면, 하나님을 다른 존재와 동등하게 보는 행위를 우상숭배로 보는데, 이는 유일하게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꾸란은 우상숭배를 무섭게 경고할 뿐 아니라, 전능한 하나님 이외의 어떤 신이나 신성존재도 과감하게 부인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 이외 다른 신에게 동등 히 모신다면, 그 신은 인간이 만든 허상에 불과합니다.

 

여기에서 꾸란은 모든 종류의 다신론을 부정할 뿐 아니라, 거짓 신들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며 단지 숭배자의 상상이 만들어낸 산물 일 뿐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어떤 존재라도 하나님 허락 없이는 인간에게 조금치의 이익을 줄 수가 없으며, 조금치의 해도 끼칠 수 없습니다.

 

 

꾸란은 우주를 지배하고 만사를 결정하는 신을 경배하면서 대등한 어떤 동반자도 세우지 않음은 물론이요, 신성한 존재를 재현하거나, 인간처럼 혹은 다른 어떤 형태로건 표현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꾸란은 다음구절을 통해 근본적 초월기준을 제시합니다. “하나님과 같은 존재는 없다.”(42:1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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