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생활

Originally posted 2019-05-15 10:46:18.

 

진정한 무슬림 사회생활은 지고한 원칙에 기초하여, 사회는 물론 개인 행복과 번영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계급갈등, 사회적 특권 계층, 그리고 개인 독식 지배 등은 이슬람 사회생활과 거리가 멉니다. 꾸란과 무함마드 언행록 어디에도 계급이나 출신, 집안 혹은 재산을 근거로 우월성을 인정한다는 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반면 인류가 살아가는데 극히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이슬람적 삶을 사회구조의 원리로 삼는 꾸란 구절과 무함마드 말씀은 여러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사회 생활

사회 생활

이 말씀에서 중요한 사실은, 모든 인류가 한 부모에게서 나서 같은 최종 목적을 지향하는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공통 조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인류는 통일성을 지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아담과 하와로부터 내려온 세계 가족의 일원이며, 공통의 책임을 지고 공통의 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가집니다. 모든 사람이 아담과 하와 후손이며 하나님 피조물임을 깨닫는다면, 인종적 편견, 사회적 부조리 혹은 2등 시민 차별 등이 발붙일 여지가 없습니다.

공통 부모로 태생이 통일되어 있듯이 사회적 행위도 통일될 것입니다. 꾸란과 무함마드 언행록은온 인류가 기원과 본성에서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강조합니다.

여기에서 인종적 자만이나 민족적 우수성을 주장하는 것 은 의미를 가지지를 못하며, 오직 형제애만 남을 뿐입니다. (꾸란 4:1, 7:189, 49:10 – 13)

인류는 기원뿐만 아니라 최종 목적으로도 통일됩니다. 인류 최종 목적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꾸란이 말하는 창조 목적이란 하나님만을 섬기고, 진리와 정의, 사랑과 자비, 형제애와 도덕이라는 하나님 대의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꾸란 51:56 – 58)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통일성에 기반을 둡니다. 통일성이란 이슬람 사회를 바탕으로, 같은 기원과 같은 최종목적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개인 역할은 사회 역할을 보완하는 데 있습니다. 개인과 사회는 사회적 연대와 공동 책임이 있습니다. 개인은 사회의 공통 복지와 번영에 책임을 집니다. 이러한 책임은 사회뿐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개인은 사회를 건전하게 지키고,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올바로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공통 복지에 기여하는 것이 개인의 역할입니다.

사회 역시 개인복지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이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개인에게 능력이 있을 때, 개인이 수여자가 되고 사회는 수혜자가 됩니다.

개인이 무력할 때는 사회가 개인 안전과 보호를 책임져야 합니다. 개인이 수혜자가 되고 사회가 수여자가 됩니다. 의무와 권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책임과 의무는 개인과 사회 모두의 것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지배하려는 의도로 개인 사생활을 말살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한 개인이나 계급이 사회를 착취하고 국가를 타락시켜서도 안 됩니다. 개인과 사회는 서로 안전과 평화를 제공해야 하며, 건설적으로 상호 작용해야 합니다.

기원과 최종 목적에 따른 인류 통일성과, 그리고 그에 따른 상호책임과 관심 이외에도 이슬람 사회생활의 특징은 선하고 경건한 일을 서로 협력하는 데 있습니다.

무슬림은 개인 생명과, 재산이나, 명예에 대한 신성한 권리를 충분히 인식하면서, 사회적 도덕과 윤리적 측면에서 각 개인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슬람 사회에서 개인은 사회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수 있도록 돕습니다. 사회에 무관심한 개인은 이기적인 죄인이자, 윤리가 추락하고, 양심이 흔들리며, 신앙은 피폐한 사람입니다.

이슬람 사회생활 구조는 기품이 있을 뿐 만 아니라 견실하며 모든 것을 책임집니다. 이러한 구조를 이루는 실질적인 요소는, 인류에게 동료의식과 사랑을, 젊은이에게는 자비를, 노인에게는 공경을, 고통 받는 이에게는 위로를, 환자에게는 보살핌을, 슬픔에 젖은 이에게는 위안을 제공하는 진정한 형제애와 사회적 연대입니다.

타인 생명이나, 재산과, 명예에 대한 권리존중은 물론, 개인과 사회 사이에 대한 상호 책임입니다. 선지자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른 이의 슬픔을 덜어 준다면,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슬픔을 덜어 주실 겁니다.”

“연소자에게 자애롭지 못하고 연장자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우리 무슬림 가운데 들지 못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동료를 사랑하지 않는 한 진정한 무슬림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선으로 이끄는 사람은 선을 행하는 이와 다를 바 없으니 이에 상당하는 보상이 따를 것이며. 그리고 악을 충동하는 사람은 악을 행하는 자와 다를 바 없으니 이에 상당하는 응분의 처벌을 받게 됩니다.”

꾸란에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있습니다.

“오, 그대 믿는 이들이여, 하나님을 늘 유념하리니, 그래야만 할 것임에, 무슬림이 아닌 상태에서 죽지 말아야 하노라.

다 함께 하나님의 밧줄을 잡고 흩어지지 말 것이며, 그대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할지니, 그대가 서로 원수였을 때, 은총으로 마음을 맺어 형제가 되게 하셨으며, 불구덩이에 가까웠을 때, 지켜 주셨노라, 이토록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징표가 확실하니, 그대가 안내 받기 위함이로다.

그대 중에서 선으로 초대하여, 의를 권하고, 악을 금하는, 무리를 일으키리니, 성공하게 될 것이니라.” (꾸란 3장 102 – 104절)

“오, 그대 믿는 이들이여, 모든 의무를 지킬 것이니. …… 올바른 일에 서로를 돕고, 악행은 협력하지 말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리니, 진정 형벌에 엄격하신 분이로다.” (꾸란 5장 1 – 3절)

 

앞에서 말한 내용에 더해, 선지자 무함마드가 마지막 순례 여정 중 설교에서 이슬람 사회생활 양식을 한 번 더 볼 수 있습니다. 순례자 수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선지자 무함마드가 한 설교에서 특히 살펴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후 다시 한 해가 나에게 허락되어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으련 지를 모르겠기에 지금 내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기를 바랍니다.

모두에게 순례의 달이 신성하듯, 모든 이의 생명과 재산은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모두 신성하니, 여러분 행위로서 주님 앞으로 나가리라는 점을 염두에 두십시오.

여러분은 아내에 대한 권리가 있는 만큼, 또 아내는 여러분에 대한 권리가 있으니 사랑과 친절로 대하도록 하십시오. 정녕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하나님 말씀으로 아내를 맞이하고 법적 부부가 되었으니 언제나 충실하고 죄짓지 마십시오.

이제부터 무지와 이교도가 남긴 산물인 유혈 보복을 금하며 피 흘리는 모든 복수는 폐지됩니다.

하인도 역시 하나님 종복이기에 여러분이 먹고 입는 것과 똑 같은 음식과 옷을 주십시오. 용서하기 어려운 잘못을 저지른다면 떠나 보내야지 학대하거나 때리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내 말을 주의해 듣고 잘 깨닫기 바랍니다.

모든 무슬림은 서로가 형제이니 여러분은 모두가 오직 한 형제입니다.

호의로 주지 않는 한 다른 형제의 것은 불법인바, 부당함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지키십시오.

이 성역에서 순례를 하는 성 월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 생명이나 명예와 재산은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모두 신성하게 만드셨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여기 없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십시오. 전해 들은 이가 직접 들은 이보다 더 잘 기억하게 하십시오

이제 난 나에게 지닌 사명을 이루었으며, 그것을 여러분에게 남기니 분명한 명령이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성서요, 명백한 법령이라 굳게 지킨다면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이세상은 모두 창조주가 만드셨으므로 창조주 섭리에 따른 고유 성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 몸은 이세상에 있으나 세상 안에 존재하지 않는, 방관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고 피조물들은 시공간 흐름 속에서 창조주가 부여한 고유 성질과 의미를 잃게 됩니다.

이 같은 전제조건 없이는 책임, 즉 도덕적인 사명이 사라지고 그렇게 됨으로써 창조주께서 준비 한 의도와 권능이 파괴될 것 입니다. 절대적 존재로서 신성함은, 천지창조 날부터 심판 날에 이르는 세월 속에서, 피조물로 인하여 반드시 드러납니다.

도덕행위로서 사회생활을 이루는 주체로서 인간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동료, 사회, 자연,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만 합니다. 자신과 주변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통해 창조주의 법칙과 말씀을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두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습니다.

사회적 도덕행위 대상으로서 인간은 자기 자신과, 동료나, 주변 도덕적 행위를 수용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도덕이나, 대상과 상호작용이 없는 도덕이라면 그 효용성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도덕적인 행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곧 인간에게 주어 진 도덕적 역량을 뜻합니다. 도덕을 수용할만한 능력이 없다면 인간에게 도덕적 행위가 성립할 수 없으며, 도덕으로 가치를 갖는 인간 목적이나, 창조주께서 세우신 계획 또한 무너질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세상 방관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유일할 뿐 아니라 창조주가 이룬 업적이 의미 있다는 전제하에, 창조에는 목적이 있으므로 그 창조목적에 순응해야 합니다.

또한, 창조 목적을 사회생활에 적용해 인간 자신을 둘러싼 이세상 구조상태 관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인류에게 주어진 목적 즉, 창조주의 의지를 구현하고, 구체화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 주어진 육체적・정신적・영적 본질을 포함한 창조와 사회생활에 대한 진실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시공간을 통한 절대적 존재 창조주께서 만든 법칙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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