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무슬림은 – 2

Originally posted 2019-05-15 10:01:41.

진실한 무슬림은, 시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지식과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무관심하지 않으시며 보고 계시지 만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칙과 힘은 늘 작용하면서 광대한 영역의 질서를 유지하며 우주를 온전히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분으로 늘 사랑하시며, 하시는 모든 일은 반드시 선한 동기에다 그 의미와 목적이 있습니다.

일단 이런 생각을 마음에 새긴다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비록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심지어 그것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굳은 신앙심으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진실한 무슬림은, 시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지식과

진실한 무슬림은, 시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지식과

우리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하시는 일이라면 모두 무엇이든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식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 생각은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는 반면, 하나님의 인식은 무한하며 하나님의 계획은 보편적 차원에서 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운명론자가 되거나 무력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인간의 책임 사이에 경계를 그을 뿐입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유한하고, 육신의 제약 속에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능력과 자유 역시 유한하고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자 하시게도 우리가 하는 일에만 책임을 물으십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나 하나님께 속한 일은 우리가 책임지지를 않습니다. 제한된 속성과 책임에 맞게 제한된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수행하실 때 시간을 초월하는 지식과 능력을 지니고 계시지만, 그와 같은 사실이 우리에게 주어진 한계 내에서 우리 스스로 일하는 것을 막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세우며 올바르게 선택하라고 권유를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거나 원하는 대로 되지를 않는다고 해서 신앙심을 잃거나 정신적 긴장, 건강을 해치는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한번 해서 안 되면 다시 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땐, 최선을 다했으니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경우는 우리 능력과 책임 한계 밖의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관계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바로 정명에 대한 믿음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시간을 초월 하시 노라는 섭리는 세상 현상을 예견하며, 세상 현상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정확히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꾸란 18:29, 41:26, 53:33 – 62, 54:49, 65:3, 76:30 – 31)

진실한 무슬림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무의미하게 창조하지 않으셨으며, 인생에는 인간 육체적인 필요와 물리적 활동을 초월하는 더 웅대한 목적이 있다고 믿습니다.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은둔과 명상으로 생애를 보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율에 따라 삶의 곳곳에서 하나님 법을 시행하며, 옳은 일을 하고, 악을 피함으로써 하나님의 대의를 세우는 것이며, 자신과 동료, 인류를 공정하게 대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삶에서 도피하지 않고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더할 수 없이 높은 하나님의 덕성이 우리 몸에 배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겸손의 표현이 아닙니다.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말도 아니고요.

오히려 매우 포괄적이고 결정적인 말입니다.

삶에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인간을 창조한 것 이라면, 그 책임에서 회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임무를 주실 때 에는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도움도 함께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스스로 행동을 결정 할 수 있는 지성과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력을 다해 자신의 존재 목적을 추구할 것을 권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인생을 헛되이 보내거나 자신이 맡은 바를 등한시한다면, 나중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꾸란 21:17 – 18, 51:56 – 58, 75:37)

진실한 무슬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유의 위계 질서에서 인간이 특별히 높은 지위를 누린다고 믿습니다.

인간이 이처럼 뛰어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합리적 사고력에 기반한 행동 능력 그리고 영적 열망을 지니고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그 지위가 높아질수록 책임도 무거워지는 법 입니다.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하나님 대리자의 지위를 차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대리자로서 임명하신 인간은 필연적으로 권력과 권위를 갖기 마련입니다. 적어도 명예롭고 고결한 존재가 될 잠재력을 타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슬람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입니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저주받은 종족이 아니라, 훌륭하고 고귀한 업적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된 존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 가운데 선지자를 택한 사실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신의를 갖고 있으며 유능하고 선(善)이라는 보물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꾸란 2:30 – 34,6:165, 7:11, 17:70 – 72, 90 – 95)

진실한 무슬림은, 모든 사람이 무슬림으로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출생 과정 자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하고 하나님 명에 따른 결과로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또 모든 사람에게 영적 잠재력과 지적 성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슬람을 접하고 천성을 향상시킨다면, 타고난 잠재력과 성향을 통해 훌륭한 무슬림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슬람을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전할 때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슬람은 인간 자연적인 열망과 함께 윤리적・영적 요구를 충족하려는 사람에게, 그리고 개인・사회・국가・세계 어느 차원에서건 건설적이고 건전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유용하고 올바른 삶의 방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건 목적으로 인간을 창조 하셨기에 인간의 본성에 맞는 유익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종교가 이슬람인 까닭입니다. (꾸란 3:30, 64:1 – 3, 82:6 – 8)

진실한 무슬림은, 모든 사람이 타고난 죄도, 타고난 덕(德)도 없다고 믿습니다.

사람은 새 공책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성인이 되었을 때 자기 행동과 말에 책임을 질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짓지 않는 한 어떤 죄에도 구속되지 않으며, 자기 계획에 따라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행동 할 자유를 누립니다.

이 두 가지의 자유, 즉 원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와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 덕분에 무슬림들 양심은 상속 받은 죄라는 무거운 짐에서 해방됩니다. 이슬람에는 원죄라는 것이 없습니다. 원죄 교리가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불러일으키는 불필요한 긴장이 없습니다.

이슬람에서 자유개념이란 하나님 정의라는 원칙과 각 개인이 하나님께 직접 책임진다는 원칙에 기초합니다. 각 개인은 자신의 짐을 스스로 져야 하며 또 자신이 행한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만 합니다. 그 누구라도 타인이 저지른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아담이 죄를 범했다면, 속죄는 바로 그 자신, 아담의 책임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용서 할 수 없었다거나, 또 다른 누군가가 아담의 죄를 대속해야 했다거나, 아담이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거나, 용서를 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말은 믿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용서 해 주시는 덕성과 용서의 권능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에도 어긋나는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원죄론 은 하나님에 대한 상식을 무시하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꾸란 41:46, 45:15, 53:31)

이 같은 논리와 꾸란 권위를 바탕으로, 여느 지각 있는 죄인이 그러하듯, 아담이 자기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자비롭고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용서를 베푸셨노라 믿습니다. (꾸란 2:35 – 37, 20:117 – 122)

그러므로 아담뿐 아니라 전 인류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져 예수가 그 죄를 대속하러 올 때까지 용서받지 못했다는 교리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전 인류의 죄를 단번에 제거했다는 이야기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부언하자면, 예수의 대속 교리를 믿지 않는 이유는 이 교리가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라는 원칙에 반하고 인간의 창조 논리와 존엄성에도 반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에 대한 무슬림 존경심이 약해지거나, 이슬람에서 예수가 차지하는 높은 지위가 내려 간 다던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뛰어난 선지자로서 예수를 받드는 신앙이 흔들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무슬림은 이러한 교리 없이 예수를 받아들이기에, 예수를 더욱 높이 평가하고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 또한 이슬람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무슬림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선지자 모두를 차별 없이 받아들이고 존경해야 만 합니다.

진실한 무슬림은, 하나님께서 주신 인도를 통해 자기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는 구원을 얻으려면 신앙과 실행, 신념과 실천이 모두 겸비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실천을 동반하지 않는 신앙이란 신앙이 없는 실천만큼이나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현실화되어야 만 비로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앙의 다른 기본 요소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하나님께서는 말 뿐인 믿음을 받아 들이지 않으시며, 진실한 신자라면 신앙이 요구하는 실천적 요건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누구라도 타인을 대신하거나, 또 누구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 할 수가 없습니다. (꾸란 10:9 – 10, 18:30, 103:1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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