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까시드 알 샤리아의 의미 – 2

Originally posted 2020-02-12 12:04:06.

알 일라 al-Illah:

 

이 용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중대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이 용어가 어떻게 이용되는가, 즉 이 맥락에서는 히크마와 동의어로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용어는 점차 샤리아의 판결이 명백히 의도하는 취지를 말하기 위해 주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무스타파 샬라비 Mustafa Shalabi는 일라의 용례를 다음과 같이 셋으로 구분합니다.

(1) 어느 행위가 초래하는 이익이나 손실

(2) 어느 판결이 초래하는 이익이나 그로 인해 방지될 손실

(3) 어느 판결이 인류에게 유익함을 초래할 것이라는 명백한 이유.

 

그리고 샬라비는 이렇게 말합니다.

“셋 모두 법리(일랄 ilal)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 하지만 나중에는 법리에 따른 결과를 일라로 표현했다. 이 경우는 법리에 맞는 결과를 통해 일라를 정의했기 때문에 이 용어를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행위의 결과로서 나타날 수 있는 이익이나 손실을 모두 지혜로운 의도(히크마)라고 언급하고 일라로 인정한다.”

 

이맘 알 샤티비는 일라를 히크마, 즉 지혜로운 의도 혹은 (하나님이) 명하거나 허락한 것과 관련이 있는 유익이나 (하나님이) 금한 것과 관련이 있는 손실이라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고난 때문에 여행자가 예배 시간을 줄이고 단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일라입니다. 일라로 인해 여행 중 이런 조치가 정당해집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일라는 유익이나 손실의 근원이라기 보다는 유익이나 손실 그 자체입니다.

이맘 알 샤티비가 일라를 해석하는 방식이 샤리아의 목표 연구에 가장 적합합니다. 왜냐하면 추론을 통해 판결을 구할 때, 일라와 우리가 구하는 이익 혹은 피하려고 하는 손실 간의 연결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슬람법학자들은 샤리아의 목표를 기술하면서 ‘적절함’(무나시브 munasib)이라는 용어도 사용합니다. 여기서 적절성이란 개념은 판결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맘 알 바이다위 al-Baydawi에 따르면, “‘적절함’이란 유익을 주고 손실을 방지한다는 뜻입니다.”

 

‘적절함’이란 용어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이맘 샴스 알 딘 알 이스파하니 Shams al-Din al-Isfahani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적절성이란 바람직한 결과를 내려면, 어느 상황에서 유익을 초래하거나 해악을 방지할 의도의 판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맘 알 아타르 al-Attar는 ‘잠 알 자와미 Jam al-Jawami’의 주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적절함’이란 단어는 위에서 하나님의 취지라고 언급된 일라에 반영된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맘 알 가잘리 Imam al-Ghazali는 적절성을 특정한 판결과 인간이 그를 통해 얻으려고 하는 유익성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정의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절함’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특정한 판결 결과로서 유익을 얻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알코올은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적 사고야말로 윤리적 성실성을 유지하는 기초가 되는데, 알코올이 이성적 사고 능력을 빼앗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결정(판결)은 ‘적절하다’라고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용어들은 알 마까시드 알 샤리아 혹은 이슬람법의 목표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 것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사람들이 널리 사용하는 용어만 소개했을 뿐, 드물게 사용하는 용어들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소개한 문서 증거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꾸란과 전언 자 언행록, 인간 이성 간에는 어떤 모순이라도 없음을 보여주는 여러 논증을 소개하고 이 과정에서 합리주의자들이 제기하는 의문들을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하나님의 입법은 목표를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의도가 유익을 가져오고 해악

을 방지하는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합리적 증거들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첫째: 지혜와 바람직한 목표가 없는 판결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거나, 그런 목표를 성취할만한 능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는 해당하지 않는 일입니다.

게다가 오직 타인의 유익을 도모할 생각이 없는 신앙이 지혜와 가치 있는 목표가 없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데, 이 역시 가장 자비롭고, 자애로움이 핵심적 정체성을 차지하는 하나님께는 해당되지 않는 일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로지 유익함을 주시는 존재이시며, 호의와 축복을 주시는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로막는 무엇이 있다 한들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은 모두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목표 자체가 불완전한 것일 수도 없습니다. 그런 가정은 사실관계에 어긋나고, 논리적으로 맞지를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지혜롭고 목적의식 있게 행동하는 사람은, 목적 없이 행동하는 이보다 더 찬양을 받아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창조하는 이는 하지 않는 이보다 완벽하고, 아는 이는 모르는 이보다

완벽하며, 말하는 이는 말하지 않는 이보다 완벽하고, 의지를 실현할 능력이 있는 이는 그런 능력이 없는 이보다 완벽합니다.

이 모든 사실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혜와 취지를 부정함은 하나님을 반대하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복 들의 전 인생을 통해 그들의 복지를 돌보신다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결국 우리들을 무에서 창조하셨으며, 다른 모든 창조물을 우리 밑에 두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내린 법 판결과 관련하여 우리 이해를 무시한다면, 현세와 내세에서 종복 들 복지를 돌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실로 그 판결이야말로 우리의 재산, 생명, 명예를 지켜주는 것으로, 우리는 그것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샤리아 판결을 정하실 때 우리 이해와 복지를 고려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슬람 입법에서 모든 측면은 유익함을 확실히 하는 데 있습니다. 이슬람 입법이 요구하는 바는 무엇이든지 단기적으로나 혹은 장기적으로 유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며, 이슬람법에서 금지하는 것은 모두 해악이나 악덕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샤리아 법 목표가 모든 세세한 측면에서 이슬람의 법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이를 잘 이해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슬람 법 목표와 목적을 통해 이슬람이 내리는 명령이나 금지 하나하나에 있는 지혜를 이해할 수가 있으므로, 우리 믿음과 확신, 바른 일에 헌신을 강화할 수가 있습니다.

 

무슬림 법학자들로 말하자면, 기존의 판결을 조사하며, 문서를 연구하고, 새로운 판결을 연역할 때 이슬람법 목표를 고려합니다. 주어진 사건에 적용되는 판결을 알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문서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겉보기에도 모순적인 증거나 문서를 이해하려면 샤리아 목표에서 도움을 얻어야만 합니다.

 

이맘 알 샤티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판결을 내릴 시 경건한 무슬림의 의도가 하나님께서 입법을 하셨을 때 의도와 일치하는 것이 목표다.

이슬람법을 보면 여기에 대한 증거를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다. …… 따라서 경건한 무슬림이라면 자신이 내린 법적 판단이 하나님의 의도와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어야 한다.”

 

샤이크 압둘라 다르라즈 Abdullah Darraz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특히 무즈따히드 Mujtahid(이성론 자)라면, 각각 문제에 대한 판결에서 샤리아의 최종목표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그 판결이 이슬람법이 추구하는 보편적 목표 아래 자리해야만 하는데 다시 말해, 각각의 판결은 보다 보편적 원리의 개별적 표현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즈따히드(이성론 자)의 입장에서 목표지향적 관점은 모든 종류의 판결을 끌어내는 지도적 규칙입니다. 지금부터 무즈따히드(이성론 자)가 새로이 떠오르는 문제와 사안에 대한 판결을 받아들일 때, 이슬람법의 목표가 행하는 역할을 설명합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란 엔지니어이건 선생님이건, 노동자건 장사꾼이건 간에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종교란 이렇게 많은 직업 중 하나가 아닙니다. 이슬람에는 직업적 성직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조차도 성직자 중재 없이 행해집니다.

그러나 법률학과 공공질서가 필요로 할 때에는 법을 전공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때 이슬람 법률과 헌법을 연구하는 전문가의 지위는 다른 나라와 같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권위라든지 명성이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법률학자며 국가에 대한 조언자일 따름입니다.

 

이슬람 계율이 세워졌을 때 이슬람 학자들이 자동적으로 정치가나 성직자, 사무국장 등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변화 한 것이라면 단지 규율근거를 이슬람법에 적용한다는 것뿐 이었습니다. 엔지니어는 여전히 해 오던 일을 했으며 의사 역시 의학적인 일을 했으며 경제학자들은 이슬람의 경제가 나타내는 상황변화만으로 그 사회 경제생활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역사에는 이슬람 신앙심과 그 규율체계가 과학이 과학적용과 충돌 한 적이 없노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습니다.

 

이슬람법의 취지는 사람들에게 고행이나 불필요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욕망을 만족시키고 변덕에 굴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이슬람법이 경건한 무슬림을 위해 편의를 제공하는 방법을 밝히고 이런 목표를 위한 원리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샤리아가 현세와 내세에서 하나님의 종복에게 제공하는 편익을 최대화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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