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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무슬림은 – 1

진실한 무슬림은, 하나님께서 올바른 길을 우리에게 먼저 가르치신 다음, 나중에 그 책임을 지게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토록 이나 많은 선지자와 계시를 보내셨습니다.

바른길을 미리 알리고 경고하기 전에 벌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이나 선지자들 말씀을 전혀 접하지 못한 사람이나 온전치 못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자기 건전한 상식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만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하나님 법을 어기거나 바른길에서 이탈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저지른 악행으로서 처벌을 받습니다. (꾸란 4:165, 5:16 & 21, 17:15)

진실한 무슬림은, 하나님께서 올바른 길을 우리에게 먼저 가르치신 다음, 나중에 그 책임을 지게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토록 이나 많은 선지자와 계시를 보내셨습니다. 건전한 확신을 중요시하고 맹목적인 모방을 반대하는 것이 이슬람 방식입니다.

건전한 확신을 중요시하고 맹목적인 모방을 반대하는 것이 이슬람 방식입니다.

이점은 모든 무슬림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세상에는 이슬람에 관해 들어보지도, 알 방법도 없는 사람이 수 없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이라도 이슬람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진실하고 훌륭한 무슬림이 될 수 있습니다.

알 수가 없고 알 길도 없는 사람에게 무슬림이 되지 않았다고 하여 책임 지우는 일은 없습니다. 그 대신, 이슬람을 소개 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이슬람으로 초대 해 이슬람의 참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무슬림은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무슬림은 말로 만 이슬람을 전할 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이슬람을 충실히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꾸란 3:104, 16:125)

진실한 무슬림이라면,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 본성에 악함보다는 선함이, 절망적 실패보다는 성공적 교화 가능성이 더 크게 있음을 믿습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인도하시기 위해 선지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고 계시를 보냈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만약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어떤 희망도, 인도 가능성도 없는 존재였더라면, 절대적 지혜를 가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인간에게 책임을 부과하시어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말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일이 허사라면, 굳이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살피시고 관심을 쏟는 사실 자체가 인간이 무력하거나 가망 없는 존재가 아니라, 선을 식별하고 선해지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고 인간을 합당하게 신뢰한다면, 정녕 우리 세대에도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꾸란을 면밀히 연구하고 뜻을 되새겨야 합니다.

진실한 무슬림이라면,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신앙이 아닌 맹목적 추종이나 의문 없는 수용은 완전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신앙에 따라 행동하고 믿음과 실행으로 구원에 이른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 기만이나 강요 없는 튼튼한 확신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집안 전통 때문에 무슬림으로 자처하는 사람, 강요를 받거나 맹목적으로 모방해 이슬람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완전한 무슬림이 아닙니다.

풀리지 않는 의심이 남아 있거나 반신반의하는 것이 아닌, 충분한 근거를 가진 확신으로 신앙을 구축해야만 합니다.

자기 신앙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자연현상을 관찰하거나, 이성의 힘을 발휘하거나, 꾸란의 가르침을 성찰하라고 권유 하십니다. 논쟁 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진리를 찾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신중하고 진지하게 찾으려고 자 한다면 그 진리는 찾게 될 것입니다. (꾸란 2:170, 43:22 – 24)

건전한 확신을 중요시하고 맹목적인 모방을 반대하는 것이 이슬람 방식입니다.

강한 확신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믿음이나 자기 마음속에 어떤 의심이 남아 있다면 진정한 무슬림이라 자처 할 수 없습니다. 이슬람은 굳건한 확신과 선택의 자유를 기초로 할 때만이 완전한 신앙이 되기 때문에, 신앙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강요당한 신앙을 받아 들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마음 속 에서 우러나오지 않거나, 자유롭고 건강한 확신에서 비롯되지 않는 이슬람은 진정한 이슬람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진실한 무슬림은, 꾸란이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꾸란을 여러 번에 걸쳐 조금씩 부분적으로 계시 하셨습니다. 각각 계시는 특정 질문에 답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논쟁을 종결 짓는 것이었으며, 인간을 진리와 영원한 행복으로 이끄는 최선의 지침입니다.

꾸란은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님 말씀입니다.

꾸란에서 나오는 소리 하나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 만들어내는 울림입니다.

꾸란은 가장 믿을 만한 이슬람 원전입니다. 꾸란은 아랍어로 계시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여전히 완전한 아랍어 원본으로서 존재하며 또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직접 관심을 쏟아 꾸란을 보존하시고 언제 어디서나 인류에게 최선의 길잡이가 되도록 하며 왜곡을 방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꾸란 4:82, 15:9, 17:9, 41:41 – 44, 42:7, 42:52 – 53)

꾸란이 문체 변화는 물론, 심지어 점하나 바뀌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 된 유일한 성서라는 사실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직접 스스로 보전 하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꾸란을 기록하고 장과 절을 구성하고 본문을 보존한 역사는 무슬림뿐 아니라 정직하고 진중한 학자들 마음속에도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습니다.

다시 말 해, 이는 어떤 신앙을 가진 학자라도, 지식인으로서 양심을 지킨다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꾸란이 불멸의 기적이라는 이유는 온 인류가 나선다 하더라도 꾸란의 어느 한 부분조차 흉내 내거나 만들어낼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꾸란 2:22 – 24, 11:13 – 14, 17:88 – 89)

진실한 무슬림은, 꾸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 하디스가 확연히 구분된다고 믿습니다.

꾸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무함마드의 언행록은 꾸란에 대한 실천적 해석입니다. 무함마드는 꾸란을 하나님께 받은 그대로 전했습니다.

계시 받은 말씀을 해석하고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 또한 무함마드가 맡은 사명이었습니다. 무함마드가 내린 해석과 실천이 무함마드의 언행록 하디스를 만들었습니다. 무함마드의 언행록은 이슬람법의 두 번째 원전이고, 첫 번째 원전이자 판단기준인 꾸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무함마드의 언행록과 꾸란 사이에 조금이라도 어떤 모순이나 불일치가 있다면, 무슬림은 꾸란을 고수하고 나머지는 모두 질문 앞에 열어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함마드의 언행이 꾸란에 어긋나거나 상반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차원을 초월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시간과 공간을 적용 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영원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계시며, 다른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은 채 스스로 존재하시는 까닭입니다.

일부 철학자나 과학자들이 주장하듯 우주가 영원하지도 않고 창조되지도 않았다는 말과는 달리,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것을 만드셨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창조되지도 않았으며, 시간적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은 크게 두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신과 또 신이 아닌 존재, 즉 창조주와 피조물이며 창조는 전지전능 하시며 유일하신 하나님 영역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 이시며 영원한 창조주로서 초월적인 분 이시며. 하나님께 견줄 만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시며 영원히 존재하고 유일 하시기에 동료나 협력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피조물이란 시공간 사이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만물에 불어넣은 하나님 질서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 식물과 동물, 인간, 신령과 천사, 하늘과 땅, 낙원과 지옥 등 천지창조 이후에 탄생 한 모든 것을 뜻 합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로서 서로 완전히 다른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가 지닌 영역을 침범하거나 서로가 그 역할을 대신 하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창조주 역시 피조물이 될 리가 없을 것 이며, 피조물은 어떤 식으로든, 피조물인 자신과 창조주와 관계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피조물의 역할을 넘어 창조주가 될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이세상에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 관계는 관념적입니다. 관념은 인간 이성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은 기억, 상상, 이성, 관찰, 직관, 불안 등 철학적, 과학적 기능을 하는 두뇌를 갖고 있는데 창조주께서 인간을 생각할 수 있는 생명체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이 지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창조주의 의지와 섭리도 충분히 인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의 피조물 즉, 세상의 사물, 동물들을 관찰해 창조주의 원리를 발견할 때와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문자로 인간에게 직접 전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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