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ly posted 2019-05-29 10:44:23.
확실히 그렇게 많은 문서를 인용하면서 마까시드 알 샤리아 타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장들이 단언하는 다양한 원리들을 기초로 하여 이를 확보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 원리들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꾸란 여러 곳에서 알 하킴 al-Hakim(전지하신 분, 판결 자)임을 밝히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할 때, 하나님의 판결 역시 올바른 취지로 성립된 것이 틀림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만사를 올바른 곳에 배치 하셨듯이, 하나님의 판결 역시 현세와 내세에서 인간 복지를 실현하기 위하여 정확하게 내려진 것입니다.
이븐 알 까이임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떤 말이 찬양할만한 목표나 유용한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현명하다고 간주될 수 없다. 말이 효과적인 지식과 올바른 행위를 위한 지침이 될 때, 바라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하지만 말하는 자가 듣는 이들에게 유익을 주거나, 그들을 인도하여 행복을 갖게 만들거나, 행복을 가로막는 것에 대해 경고하거나, 궁극적 목표에 대해 말하거나, 이와 관련해 전언 자나 계시를 보내거나, 이를 이루기 위해 보상과 처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 말은 지혜의 원천이라고 볼 수 없고, 그 말을 하는 이도 지혜롭다고 할 수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더할 나위 없이 지혜롭도다!”
둘째: 하나님께서 꾸란의 여러 곳에서 ‘가장 자비로운 분’으로 밝히고 계십니다.
다음 문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이시여, 저희가 믿었음에 용서하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하나님은 가장 자애로우십니다”
(23장 알 무으민 109절)
“내 자비는 모든 것을 포용하노라” (7장 알 아아라프 156절)
하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자비로운 분’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것, (종복 들에게) 명한 것, 입법한 것 모두가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줄 의도를 품고 있어야만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명이 원래 종복 들에게 자비 베풀 의도를 지니지 않았다면, 설사 종복 들이 그 명령을 통해 혜택을 입었다 하더라도, 그 명령 자체가 자애로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븐 알 까이임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에나 지혜와 훌륭한 취지가 들어 있으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부정하는 것이다.”
셋째: 꾸란의 내용 중에는, 하나님이 “이런 저런 이유로”, “이런 저런 일을” 하셨다거나, 하나님의 하신 일을 하나님이 다른 용어로 직접 설명하는 구절이 많습니다. 이런 구절들은 샤리아의 보편적 목표와 구체적 목표를 구성하는 기초로 기능하는데,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너희를 위해 중용의 한 공동체를 선택해 주셨으니 그대들은 그 공동체의 증인이 될 것이며 전언 자도 그대들을 위한 증인이 될 것이라.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그 전에 향했던 예배방향을 지정 하셨으니, 이는 전언 자를 따르는 이와 따르지 않는 자를 구별하고자 함이라.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커다란 시험이나 하나님께서 그대 믿음을 좌절시키지 않으셨으니 진실로 하나님은 온 인류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심이라.” (2장 알 바까라 143절)
“인간을 위한 말씀으로 또한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라마단 달에 꾸란이 계시되었으니 그 달에 임하는 그대 모두는 단식 할 것임에. 병중이거나 여행 할 경우는 다른 날로 대체하면 되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대들이 고통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심이니라. 그 일정을 채우되 그대에게 편의를 원하시니 그대에게 복음을 주신 하나님께 경배 드리며 감사하라.” (2장 알 바까라 185절)
“이런 일로 인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명령을 하셨으니” (5장 알 마이다 32절)
하나님께서는 전리품분배 문제에 대해 가르침을 주신 후, 가르침의 지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이미 충분한 부를 가졌음에도 계속 찾는다면 바람직하지 못하노라” (59장 알 하쓰르 7절)
이와 비슷한 경우에서 보자면, 하나님 전언 자는 다른사람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허락을 구하라는 명령을 설명하면서,
“과연 그러하도다! 남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허락을 구하라고 명하신 이유는, 주인이 보여주기 싫은 것을 방문자가 보게 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꾸란과 전언 자 말씀에는 이외에도 이런 저런 명령이 어떤 이유로 나왔으며, 또 어떤 식으로 샤리아의 목표에 부합하는지 설명하는 구절이 수없이 많습니다.
넷째: 꾸란과 전언 자 무함마드 언행록에서는 수많은 문서가 샤리아의 보편적・구체적 취지를 설명합니다. 보편적 취지 중 하나는 인간으로 하여금 마땅히 당하지 않아도 될 고난을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대 종교를 지켜냄에 어떤 고난도 없음이라” (22장 알 핫즈 78절)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쉽기 바라시며 고난을 원치 않으시나” (2장 알 바까라 185절)
“하나님은 어떤 고난이라도 보내기를 원치 않으시니” (5장 알 마이다 6절) 56)
인류 복지를 위한 구체적 목표에 대해서는 지하드, 구빈 세, 단식에 관한 수많은 구절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모든 복지실현을 포괄하는 문구들 또한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께서 공정과 선행과 관용을 명하셨으니 모든 수치스런 짓과 도리에 반하거나 시기를 금하시고 거듭 강조하심은 그대가 유념토록 함 이노라” (16장 안-나흘 90절)
이와 관련해서 이맘 알 하즈 이븐 압둘쌀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 인간에게 유익을 주거나 피해를 경고하는 측면에서 가장 포괄적인 꾸란 명령은, ‘보라, 하나님은 정의와 선행을 명하신다…’입니다.”
샤이크 무함마드 알 아민 알 샨끼티 Muhammad al-Amin al-Shanqiti는 이슬람 판결이 인간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다음 구절을 들어 답하곤 했습니다.
“진정 꾸란은 가장 올바른 길을 제시하노라” (17장 알 이쓰라아 9절)
마찬가지로, 전언 자는, “누구라도 남을 해치지 말 것이며, 보복하지도 말라” 고 말하면서, 샤리아는 남을 해치는 것을 금하고, 보복하기 위해 남을 해치는 것 역시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여기에서 소개한 문구들은 샤리아가 모든 창조물에게 유익을 베푸는 드높은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계시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수많은 문서 증거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논리적 증거
이제까지 소개한 문서 증거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꾸란과 전언 자 언행록, 인간 이성 간에는 어떤 모순이라도 없음을 보여주는 여러 논증을 소개하고 이 과정에서 합리주의자들이 제기하는 의문들을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하나님의 입법은 목표를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의도가 유익을 가져오고 해악
을 방지하는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합리적 증거들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첫째: 지혜와 바람직한 목표가 없는 판결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거나, 그런 목표를 성취할만한 능력이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는 해당하지 않는 일입니다.
게다가 오직 타인의 유익을 도모할 생각이 없는 신앙이 지혜와 가치 있는 목표가 없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데, 이 역시 가장 자비롭고, 자애로움이 핵심적 정체성을 차지하는 하나님께는 해당되지 않는 일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로지 유익함을 주시는 존재이시며, 호의와 축복을 주시는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로막는 무엇이 있다 한들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은 모두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목표 자체가 불완전한 것일 수도 없습니다. 그런 가정은 사실관계에 어긋나고, 논리적으로 맞지를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지혜롭고 목적의식 있게 행동하는 사람은, 목적 없이 행동하는 이보다 더 찬양을 받아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창조하는 이는 하지 않는 이보다 완벽하고, 아는 이는 모르는 이보다
완벽하며, 말하는 이는 말하지 않는 이보다 완벽하고, 의지를 실현할 능력이 있는 이는 그런 능력이 없는 이보다 완벽합니다.
이 모든 사실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혜와 취지를 부정함은 하나님을 반대하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종복 들의 전 인생을 통해 그들의 복지를 돌보신다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결국 우리들을 무에서 창조하셨으며, 다른 모든 창조물을 우리 밑에 두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꾸란에도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늘과 땅 만물이 그대에게 복종하도록 하셨으니, 보라,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말씀이 담겨 있노라” (45장 알 자디야 13절)
하나님께서 당신이 내린 법 판결과 관련하여 우리 이해를 무시한다면, 현세와 내세에서 종복 들 복지를 돌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실로 그 판결이야말로 우리의 재산, 생명, 명예를 지켜주는 것으로, 우리는 그것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샤리아 판결을 정하실 때 우리 이해와 복지를 고려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명예로움을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아담의 자손에게 존엄을 부여했으니” (17장 알 이쓰라아 70절)
인간은 가장 높은 수준의 복지를 취득할 능력이 있을 때 존엄을 취할 수 있습니다.
넷째: 만약 어떤 체제가 유익을 창출하지도, 해악을 방지하지도 못한다면 실패한 체제이며, 모방하거나 도입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입니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자기가 만든 체제가 잘못된 것이고 아무 이득이 없는 것이라는 평을 듣고 싶지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불완전하고 무지한 인간도 그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런 체제를 그대로 용납하실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