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ly posted 2020-02-12 11:57:59.
10) 그리스도 육신화 이론은 특히 글자 그대로 의미에서 확실한 신체주의이자, 의인화의 성격을 지니며, 삼위일체의 신격 중 하나 인 예수를 특별히 숭배합니다.
이는 아브라함 종교에 나타나는 신체주의의 완벽한 전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의 육신화된 모습에서 신과 인간의 실질적인 분리는 실제 불 가능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보자면 사람들이 숭배하는 구체적 대상은 로고스인 하나님 예수이고, 인간 예수는 어디엔가에 숨어 있습니다.
그 반면, 하나님께서 적절한 그 분의 존재감을 보여 주시지 못합니다. 만물의 근원이자 삼위 일체에서 제 1위를 차지하는 성부는 2위인 주 예수 그리스도에 비해 부차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사를 주관하는 반면, 성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글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종교 인 것 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격화하고 믿는,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입니다.
역사에서 인간을 완전한 신의 위치로 끌어올린 것은 그리스도교 발전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과오라 할 수 있습니다. 육신 화 교리는 의인화 이면서도 철저하게 신체주의이며, 그리스도교가 궁극적으로 저지른 일은 신성하고 초월적이며 완벽하고 거룩한 타자, 즉 우주의 하나님을 불완전하고 속된 영역으로 끌어내린 것 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신을 불완전한 한계에 가뒀으며, 사실 상 신을 두 번 십자가에 못 박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한 번은 물리적으로 못 박았으며, 다른 한 번은 예수 말씀을 왜곡함으로써 개념으로 못 박은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배신이며, 또한 아브라함 종교 일신론 정신에 가한 가장 큰 폭력이기도 합니다.
(11) 육신화의 교리는 역설이라기 보다 철저하게 모순입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본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수 세기 동안의 논쟁과 불화, 논란, 내용의 변화, 정치 개입 등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이 교리가 모순으로 가득하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육신화의 교리는 인간 이성과 합리적 사고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화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논리 범주와 합리적인 공리를 위배해야 만 합니다. 이런 논리 교착을 피 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복음을 통해 전하려는 말이 예수 자신보다 성부와 우리 이웃이라는 점을 수용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 복음을 생각하면, 이것이야 말로 유일하게 신학 적 악몽에서 벗어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솔직한 고백 없이는, 육신화를 비유로 해석할지라도, 오해 소지가 있을 것 이며 이해하기 어려 울 것 입니다.
(12) 성서 수집과 시성화(諡聖化)의 과정은 수 세기에 걸쳐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과 의도가 개입 된, 길고도 복잡한 일 이었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수많은 문제와 답변 불가능 한 질문들을 남겼고, 신약성서의 원전이 하나님의 말씀이 맞나 하는 의문을 낳았습니다.
앞에서 언급 한 바와 같이 위증과 첨언, 원전 오해 등 여러 요소가 신약성서의 순수성과 역사적 진본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오늘날 신약성서 학자 대부분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서 있습니다.
이와 함께 (그 자체로 신약성서의 원전에 인간이 개입하고 조정한 증거인) 기나긴 성서 완성 과정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신약성서가 인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가 되었습니다.
(13) 다른 성서와 달리 꾸란은 처음 생길 때부터 성서로서 완성이 되었습니다.
꾸란의 수집 작업은 수 세기 동안 진행 된 것이 아니라, 모든 기록들은 살아 생전, 몇 년의 짧은 기간에 이루 어 졌습니다.
원전의 진본성과 순수성, 보편성은 무슬림 뿐 아니라 비 무슬림 학자까지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수 세기 동안 많은 비 무슬림 학자들이 꾸란의 여러 측면에 의문과 반론을 제기 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꾸란의 연구 분야에서 꾸란 원전의 통일성, 보편성, 순수성을 유지했다는 사실에 일종 합의가 이루어 진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논쟁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는 뜻 입니다.
게다가, 가능하다면 누구라도 꾸란 같은 문장을 만들어보라는 꾸란 구절이 있는데, 실제로 지난 14세기 동안 여러 노력과 시도가 있었음에도 그 누구도 이를 해 내지 못했습니다.
반면, 하나님이 꾸란을 보호하고 보존하며 원전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약속은 1400년이 흐른 지금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원전의 순수성, 통일성, 보편성이 긴 세월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이야 말로 꾸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입니다.
(14) 꾸란에서 신을 인식하는 체계는 초월 적 입니다.
꾸란에서 밝히는 일신론은 순수하고도 엄격하며 그리고 또 절대적입니다.
꾸란은 신의 초월성, 타 자성, 유일성, 완벽성을 체계적으로 제대로 설명하는 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꾸란 구절이 이를 설명하고, 수 많은 다양한 방법과 논증으로 증명합니다.
성서와는 달리, 꾸란은 발생 할 지도 모르는 불경한 이론, 이를테면, 다신론이나 신의 권력 분할, 삼위일체 등에 방어 장치를 갖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초월이란 추상적이거나 명목상 개념이 아닌, 생생하게 살아있는 개념입니다.
초월적 신은 꾸란이 말하는 무한 한 지혜와 힘, 사랑, 자비, 여타 긍정적 속성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히브리 성서나 신약 성서와는 달리 꾸란의 인식 체계는 일관 됩니다.
명칭과 속성에서 절대적으로 완벽한 오직 하나의 신이 있을 뿐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덕성을 알 수는 없지만, 흔적과 특성, 행위를 통해 인지 할 수는 있습니다.
꾸란은 내용 전체를 통해 초월적 신(神) 사상을 일관되게 전달합니다.
꾸란의 윤리와 평등 지향 역시 내용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꾸란의 윤리 적 초월 적 일신론은 체계 적 이며 독자 적 입니다.
꾸란의 신 인식 체계는 발생 가능한 신성모독을 막기 위해 외부의 도움이나 여타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15) 꾸란이 신을 인식하는 체계는 신체 주의나 의인화 와는 거리가 전혀 없습니다.
꾸란에 나오는 소수 의인화의 표현은, 없는 사실을 덧붙이거나 억지 해석을 하지 는 않더라도, 곧바로 은유로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비 의인화의 해석이 가능 한 이유는 표현이 글의 맥락 상 은유로 볼 수 밖에 없거나 아랍어에서 흔히 사용하는 은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수 세기 동안 수 많은 연구자와 신학자가 밝혀 왔습니다.
게다가 겉 보기에 의인화로 보이는 표현이라면 신과 인간의 의사소통 과정에 필요한 융통성을 제공합니다.
꾸란의 인식 체계는 시각적 의인화나 신체주의에 의존하지 않고도 융통성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 입니다.
그 결과 이슬람은 반(反)의인화의 입장을 유지 해 왔습니다.
일부 자구를 따로 떼어내 그에 집착하는 사람은 이에 동의하지를 않겠지만, 주류 이슬람 사상은 신성을 신체주의나 의인화하는 데 항상 경계하고 반대 해 왔습니다.
이렇게 미묘한 균형이 유지 될 수 있었던 이유라면 꾸란 자체의 덕분입니다.
필자 생각에, 오늘 날 같은 이성과 과학 시대에 의인화 한 신이란 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습니다.
극 적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는 현실의 문제이지 진실은 아닙니다. 죽은 신은 의인화 된 신이며, 분명 일신론의 신은 아닙니다.
세속주의의 세계관이 성공 한 이유는 비 지성적으로 신을 보는 관점과 지성 적 세속주의가 대비되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비 지성적인 신관은 우리 오감에 지배되고, 니체 Nietzsche의 조롱으로 연민을 자아내는 신이었습니다.
이 문제 원인을 세속주의가 미신에 맞선 지성의 승리보다는 인류의 소외, 삶의 목적과 의미 상실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초월 적 하나님, 즉 인간과 우주보다 더 위대한 무언가를 희구하는 마음을 반영하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중세 말기까지에는 네 개의 주요 문명이 있었습니다.
이 중,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새 문명이 세속 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네 문명 중 이슬람 상황은 다소 다릅니다.
겔너 E. Gellner는 이렇게 말 합니다.
“이슬람에서 세속주의가 우위에 있다는 주장은 논쟁거리가 아니다. 그저 틀린 진술 일 뿐이다. 이슬람은 한 세기 전에 강했듯이 지금도 강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훨씬 더 강해졌다.”
겔너는 이러한 이슬람의 안정성과 지속성이 선명하고 강력한 일신론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꾸란의 인식체계가 현대 무신론의 도전에 맞서, 다른 문명을 뿌리까지 흔든 위험을 예방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꾸란의 인식체계는 체계적이고 윤리적이며 초월적 입니다. 핵심부터 단순 명료하고 논리적 입니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혹은 심지어 하나님 자체보다도 인간의 구원, 경건한 삶의 자세 그리고 정치・경제・사회 개혁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님 중심이라기 보다 오히려 인류 중심입니다. 본질과 윤리적 함의에서 진정 보편적이며, 모든 인종적 편견, 선민 사상, 약속의 땅, 기타 협소한 정체성의 우위를 제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