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님-1편

Originally posted 2019-08-04 14:27:10.

예수가 탄생하던 당시 실제 사회환경에 대해서는 요한이 죽임 당한 사건을 함께 언급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예수를 중심으로 전체 저항운동이 일어났다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항을 시작하기 전 예수는 사십 일 동안 광야에서 기도를 하며 보냈습니다. 당시 예수는30세였습니다. 유대 법에 따라서 이 나이가 되면, 남자는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하게 됩니다.

 

 

 

대중에게 설교하면서 로마 통치자에 맞서 싸우자고 설교한 요한과는 달리, 예수는 공개적으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아주 신중한 준비가 필요했던 것 입니다. 이전 선지자들은 재난으로 끝을 마쳤으며, 최근 요한이 당한 죽음은 예수 마음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습니다. 통찰력을 갖고 신중히 준비하여 유대인들을 조직하였습니다.

 

 

 

예수는 그 누구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공연히 이런 일로서 로마 당국으로부터 주목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뿐 아니라 ‘독사와도 같은 족속’들이 저항운동에 잠입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위험을 부담하게 될 수 밖에 없었을 것 이었습니다.

 

예수는 이스라엘 열 두 부족을 전통적으로 나타내는 숫자와 똑 같이 열 두 제자를 두었습니다. 이들에게 애국자 70명을 휘하에 두어 따르게 하였으며, 바리새인들은 암 알 아레즈(Am Al Arez), 즉 마을에서 지척에 살며 잘 훈련된 유대인들을 언제나 근거리에 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그들 모두를 최 측근으로 두었는데. 엣세네에 속한 공동체 농부들은 예수를 따르는 열성 추종자가 되어 그 명분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열성분자(Zealot)로 알려졌습니다. 성경을 따르자면, 열 두 제자 중에서 적어도 여섯 정도가 이 열성분자 이었습니다.

 

 

 

모세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확인하러 온 예수는 구약성서 구절을 인용하여 호소를 하였습니다.

 

“율법에 열성적이고 맹약을 지키는 자는 나를 따르게 하라.”(마카베오 2:27-31)

 

많은 사람이 등록하였고, 이들은 지하에서 활동하고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바르 요님(Bar Yonim)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광야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에서 단검을 사용 할 줄 아는 자들을 시카리(Sicarii, 단검술사)라고 불렀으며 경호원으로 지명된 사람들을 바르 예수(Bar Jesus), 즉 ‘예수 아들들’이라 불렀습니다.

 

역사 자료에서 이들 상당수가 언급 되었지만, 이들에 대해 신비로운 장막이 드리워져 있는 까닭으로 현재까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활동들은 이해를 할 만 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추종자들 중에서도 가장 측근이었으며, 자기 신분을 로마 첩자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숨겨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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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추종자들에게 명령하였다. “이제 누대에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누가복음 22:36) 그의 가르침과 기적에 감응 받아 추종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이처럼 만반의 준비를 한 결과를 보면, 빌라도(Pilate)의 후임 소시아누스 히에로클레스(Sossianus Hierocles) (교회 신부 락타니우스(Lactanius)의 말을 인용하면)는 예수가 약 900명에 달하는 노상 강도단의 두목이었다고 솔직하게 말 할 정도였다. 요세푸스 저서 중 분실된 판의 중세 히브리어 사본을 보면, 예수에게는 약 2천 명에서 4천 명 정도 무장한 추종 세력이 있었다고 한다.”

 

 

 

예수는 엣세네가 준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크게 신경 썼으며, 그 가르침이 “복음서와 사도서 의식과 교훈을 이 교차의 책 각 페이지마다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그러나 자기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예수는 자기 가르침 대부분을 추종자들에게 모두 밝히지 않았으며 전체 진리를 아주 극소수에게 만 전했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한복음 16:12-14)

 

 

 

예수는 국가 통치자나 학자와 바리새인들이 점유하는 성직자 등 세속권력을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보낸 평판과 함께 그 분을 따르는 많은 추종세력 때문에, 로마당국이나 또 이와 한 패인 성직자들은 자기들의 자리를 빼앗길까 봐 두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존재가 자기 들 자리에 대한 분명한 위협으로 느껴서 결국 그 분을 살해하려 하였습니다.

 

 

 

예수가 받은 사명이란 순전히 창조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분을 숭배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예수와 그 추종자들은 주님이 바라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자들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첫 싸움은 로마 당국에 충성하고 있는 유대인들과 벌어졌습니다.

 

이 싸움은 바르 예수 바랍바스(Bar Jesus Barabbas)가 주도하였고, 유대인들 사기를 꺾었으며 그 지도자를 제거했는데 그런 까닭으로 바르 예수 바랍바스는 체포되었습니다.

 

 

 

다음 대상이라면 교회 그 자체였습니다. 로마 당국에서는 연례축제와 유월제가 다가옴에 따라 그 부근에 군사를 배치했는데. 매년 이맘때가 되면, 작은 소요가 일어나는 까닭에 평상시와 다른 경계를 펼쳤습니다.

 

게다가 성소를 지키는 사원 경비대도 있었던 바. 예수 잠입은 매우 계획적이어서, 로마 군인들을 완전히 기습 공격하여 사원 장악에 성공하였습니다.

 

 

 

이 싸움은 ‘사원 청소’라고 알려졌는데. 요한복음에서 이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요한복음 2:14-15)

 

 

 

‘노끈 채찍’을 해석하면서, 카르미카엘(Carmichael)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 폭력을 뜻하고, 실제 벌어진 큰 사건을 마찬가지로 축소시킨 것이다. 사원 규모, 순례자 수만 명의 왕래, 다수 참례자 들, 경비대, 로마 군인, 환전상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리고 황소몰이꾼의 통상 반응 등을 간단히 생각해 봐도 단순한 기습공격 이상이었다. 네 번째 복음서에서 언급하는 일부 내용 뒤에 숨겨있는 광경은 틀림없이 더 다양했을 것이다. 연대기 작가들은 이를 현실이 아닌 ‘정신화’로 온화하게 해석하였다.

 

 

 

모든 자유투사 교훈 중 하나는 지방 경찰이 이들 애국자들을 동정하였지만, 점령군에게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원 방어를 완전히 무너뜨린 결정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로마 당국은 지방에서 일시 패배를 하였지만, 자기 권력은 무사히 지켜냈을 뿐 아니라 증원군을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 예루살렘 성문 방어가 며칠 동안이나 계속 되었으나, 결국 로마군 이 애국자들보다 더 막강하여서 예수 추종자들은 모두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예수 주변에서도 몇 사람만 남겨놓고는 제자들까지 도망을 쳤습니다. 예수는 지하로 숨었으며, 로마 군대는 수색에 나섰습니다.

 

 

 

‘체포’, ‘재판’, ‘십자가 처형’ 등 말에는 많은 모순과 허위 진술이 무성하여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정부에서는 예루살렘을 계속 통치하기 위해 이해관계가 많은 소수 유대인들을 잘 이용했는데 예수 제자 중에서 유다 이스카리옷(Judas Iscariot)은 은화 삼십 냥에 넘어가 예수 체포를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더 이상 말썽생기지 않도록 이 일은 밤중에 추진하기로 결정했는데 예수가 추종자들 몇 명과 함께 한 장소에 이르렀을 때, 유다가 예수에게 입맞춤하여 로마 병사들이 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한다고 사전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자 소란이 일었는데 두 유대인이 어둠 속에서 서로 뒤섞여 군인들은 예수대신에 유다를 체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무사히 빠져 나갔으며. 꾸란은 이 일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죽이지도 않았고, 십자가에 처형하지도 않았으니, 다만 그들에게 그렇게 보였을 뿐이로다. (꾸란 4:155)

 

 

 

죄수가 로마 총독인 빌라도 에게 끌려서 나왔을 때, 이 사건에서 극적 반전에 모두 만족을 하였습니다.

 

대다수 유대인들은 기적으로 예수님 대신 유다가 심판대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기뻐하였습니다. 친 로마 계 유대인들도 더불어 기뻐하였는데, 유다가 죽음으로서 자기 들 죄에 대한 증거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가 법적으로 죽음으로써 공공장소에서는 그들을 더 이상 괴롭힐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가 한 역할에 대하여 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경 내용에 나타나는 대로 그 우유부단한 태도, 유대지도자들에 대한 편애와 예수에게 대한 호의 등 이런 것들이 믿기지 않습니다. 이는 아마도 복음서 저자들이 ‘십자가 처형’에 대한 책임을 전체 유대인에게 돌림으로 서 예수를 기획적으로 죽음에 이르도록 한 로마인들 죄를 면해주기 위하여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킨 결과 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 생애에 대한 공식적 이야기가 남아있도록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외래 통치자에게 대항하지 않고 사정당국이 불만을 가질 내용을 삭제하거나 또 위장하거나 혹 심지어는 바꿔 기록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또 빌라도가 약 삼만 파운드에 상당하는 큰 뇌물을 ‘독식했다’라는 신빙성 있는 기록으로서 이를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빌라도는 당일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연극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또 다른 의미심장한 사실이 남아있었습니다.

 

이집트와 이디오피아에 남아있던 콥트 교회(Coptic Church)의 성인들 달력에서는 빌라도와 그의 부인이 ‘성인으로서 표시되어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빌라도가 자기 병사들이 사람을 잘못 체포했다는 것을 충분히 잘 알면서도 예수 대신 유다를 유죄 선고하여 그가 도피할 수 있도록 방관했다는 점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이런 사실이 가능합니다.

 

 

 

바나바스가 전하는 말을 따른다면, 체포 될 당시 예수를 창조주가 변형 시킴으로 서 자기 어머니는 물론 가까운 동료조차도 유다를 예수로서 믿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가정된 예수 죽음 뒤에도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으로 오늘날까지도 당시 사건에 대해 혼란이 있고, 당시에 없었던 자들이 저술한 이야기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잘못 믿게 하고 있다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예수를 배반자였는지에 대하여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초기 기독교인들 중 쎄린트 (Cerinthians)파와 나중에 바실리드(Basilidians)파는 예수 십자가형을 부정하고, 그 대신 죽은 자가 씨레네(Cyrene)의 시몬(Simon)이었다고 믿었습니다. 쎄린투스(Cerinthus)는 베드로, 바울, 요한 등과 동시대인으로 예수 부활을 또한 부정하였습니다. 또 다른 초기 기독교파인 카르포크라트(Carppocratians)파는 예수가 죽은 것이 아니고 그와 생김새가 비슷한 한 추종자가 대신 십자가에 처형을 당했다고 믿었습니다.

 

 

 

4세기에 살았던 플로티누스(Plotinus)는 베드로, 요한, 안드레, 도마, 바울 등의 행전을 전하는 사도들의 여행기(The Journies of the Apostles)라는 책을 읽었노라고 전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었으며, 따라서 자기를 처형했다고 믿은 사람들에게 조소를 보냈다고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하지 않았음이 잘 알려졌으니, 여러 자료에서 보면 그 대신에 누가 죽었는지 의견이 분분하거나,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어떤 주장은 거의 믿기지 않습니다.

 

 

 

‘로마 병사들이 품은 격분이 어떤 것이었는지 구약성서 몇 구절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고 있음을 볼 때, 전체 일화가 순전히 날조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생긴다.’

 

 

 

‘십자가 처형’ 이후에 예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꾸란과 바나바스 복음서 이외에는 역사 기록이 남아있지를 않습니다. 이 두 경전에서는 대체로 공관 복음서에서 ‘승천’이라고 알려진 사건을 전하는데, 예수를 이 세상으로부터 데려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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