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ally posted 2020-02-12 12:06:55.
목표 인식 위기가 사회적 행위에 미치는 영향
개요
여기에서는 이슬람법 목표가 얼마나 방치되었는지 보여주는 여러 사회 현상에 대해서 논의 하겠습니다.
그 목표는,
- 이슬람법의 핵심이 방치됨에 따라 어떤 상황에서는 과도한 엄격성이, 다른 상황에서는 지나친 관대함이 나타나는 현실을 보여 줄 것 입니다. 이 때문에 의도한 유익보다는 훨씬 큰 해악이 초래되고 있습니다.
- 샤리아의 목표에 내재한 개념을 추론하고 올바르게 적용하는 데 필요한 의식을 일깨울 수 있는 현상에 대해 논의합니다.
- 종교적 각성이 어떻게 종교적 과잉에 맞서고, 사랑과 조화, 미(美)의 목적 확산에 기여하는지 논의합니다. 그리고 사회 내 여성 무슬림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의합니다.
이제 이슬람법 목표가 얼마나 방치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여러 사회 현상에 대해 논의하겠습니다. 이슬람법 핵심이 방치됨에 따라 어떤 상황에서는 과도한 엄격성이, 다른 상황에서는 지나친 관대함이 나타나고, 이 때문에 의도한 유익보다 훨씬 큰 해악이 초래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샤리아의 목표에 내재한 개념을 추론하고 올바르게 적용하는 데 필요한 의식을 일깨울 수 있는 현상들로 논의를 한정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 다음 주제를 논할 것입니다.
- 이슬람에서 유흥과 레저가 차지하는 위치
- 종교적 각성이 종교적 과잉에 대항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 국가적 소속감의 목적
- 무슬림들 사이에 사랑과 조화를 확산시켜야 할 필요성
- 미의 목적
- 사회 내 여성 무슬림의 목표와 역할
- 의식적 전환의 방법론.
- 이슬람에서 여가와 레저가 차지하는 위치
단식 월 라마단,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 메카 순례의 새로운 상황 들, 선지자 생일이나 승천의 밤 Night of Ascension, 샤으반 Shaban의 중간 날(역주: 이슬람력 8월15일) 등의 종교행사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떠오르는 법률적 문제와 질문들이 있습니다.
이런 날 어떤 행사나 행위를 해도 되는지, 어떤 것이 원래 하기로 정해진 일인지 아니면 그냥 사람들이 꾸며낸 행사인 지 등을 두고 수 많은 논란이 벌어집니다. 이런 논란은 위성 TV 프로그램을 통해 중계할 때면 더욱 격렬해지는데, 이 때 당면한 문제나 상황에 대해 어떻게 판결할 것인가에 대한 법적 불일치와 충돌 뒤에 있는 대의를 조명하기보다 그저 더 많은 논란거리만 양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도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법적 논쟁을 해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문서 증거나 저명한 학자의 의견에 비추어, 혹은 특정 판결을 내린 법률가에 대한 질문자의 신뢰에 기초하여 한 의견이 우세하다고 증명한들, 의견의 불일치가 완전히 사라질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적 접근법과 사고방식을 교정하고, 보이지 않는 것 The Unseen(역주: ‘보이지 않는 것’은 아랍어 ‘알 가이브’를 말한다. 이는 글자 그대로는 깊은 우물 바닥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뜻하는데, 비유적으로는 하나님의 알 수 없는 심원한 뜻을 의미한다)에 대한 믿음과 존경을 고취하고, 우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적절한 방식으로 말한다면, 그러한 갈등의 정도를 완화시킬 수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 불일치 아래에 있는 개념들에 초점을 맞추면 분파주의적 편견이나 맹목적 모방, 그리고 종교 문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이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긴 누적된 오류들을 교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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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여름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하고 고민하다가 금요일 예배 전문이라는 웹사이트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나 해서 들어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이트에서 가장 좋은 컨텐츠라고 할 수 있는 설교 자체만 봐도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이성과 인간 본성 그리고 샤리아의 목표에 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설교 내용의 대부분은 휴가 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대신 무엇을 하면 좋다는 얘기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삳드 알 다라이의 원칙 즉 금지된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금지한다는 원칙이 여러 곳에서 남용되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샤리아가 명백히 금지한 행위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 때문에 일부 유형의 관광이나 정당한 여가 활동을 불법이라고 선언하는 것 이었습니다.
이 웹사이트의 설교자는 즐거움과 레저를 찾는 모든 이 들이 타락과 방종에 빠질 거라고 의심하는 듯 했습니다. 사이트는 죄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름 활동에 대한 경고로 가득했을 뿐, 샤리아의 정신에 맞는 건설적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시킬 수 있는 대안 활동으로 추천한다는 것이 꾸란 암송과 낭송 회 그리고 두 개의 신성한 성원 방문이 있었습니다.
그 외의 활동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나 일부 걸프 국가의 수도에서 진행하는 교과 과정 참가도 있었습니다.
요즘 여가에 관해 논의가 많은데, 이 논의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이제 여가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주변적인 것이 아닙니다.
한 가족이 예산을 짤 때 휴가 비용을 먼저 책정하는 실정입니다.
비즈니스 세계를 보면, 오래 전에는 농업 국가가 가장 부유했고, 지금은 공업 국가가 부유하지만, 앞으로는 관광 국가가 가장부유해질 거라는 전망이 있을 정도입니다.
오늘날의 문화 역시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나 과학적・지적 진보를 이루는 것 보다 사람들이 원하고 즐기는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무슬림도 세계의 이런 추세와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영향은 강력하고도 심오합니다. 무슬림 사회의 수 많은 사람들이 고작 며칠 간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 융자를 받으면서 가족의 의료 비용이나 교육비도 감당하지 못하면서도, 위성 안테나와 최신 휴대전화를 사고 있습니다.
어쩌면 여가 문화의 발전은 멈출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적당한 대안을 구한다면, 발전 방향을 조정하거나 우리의 가치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경감시킬 수는 있습니다.
여가의 세계에 일어나는 발전에 대한 샤리아의 입장과 관련하여, 우리는 무슬림 법률가들이 특히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이 현대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미친 듯이 열광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려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일부 무슬림 설교자와 학자는 꾸란 암송 코스나 꾸란 읽기, 학습 프로그램 참여 등만이 오락과 여가에 몰두하는 것의 대안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런 해결책은 오직 사회의 극히 일부에만 해당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식의 접근법 때문에 해당 학자의 객관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으며, 더불어 이슬람의 가르침은 모든 시대와 장소에 적용할 수 있다는 명제도 상처를 입습니다.
사람들의 생활에 맞는 건전한 법률을 만드는 목적 중 하나는 금지된 행위에 대해 가능하고 권할만한 대안을 제공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이제 과거 이슬람법이 분명히 금지한 다른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으로 금지했던 일부 행위들에 대해 시급히 재검토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남녀 모두 여러 형태로 행하는 스포츠 활동, 예술, 기분 전환을 위한 취미, 교육적 게임, 여행, 관광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철저하게 검토해보면 모두 허용할 수 있는 것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런 행위를 근본적으로 금지된 것이라고 선언하고 이를 기준으로 사람들의 명예와 신심을 재단하기 보다는, 각 행위들 속에 있는 해로운 요소들을 제거하는 편이 낫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엄격하고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관점을 강요하거나 교육적 차원에서 입법화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선지자 언행록은 여러 형태의 여가와 레저를 장려하는데,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창피하고 불법적으로 보일만한 사례들마저 있습니다!
아부 알 다르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는 정당한 오락거리를 좀 즐겨야겠는데, 왜냐하면 그래야 내가 진리를 수호하는 데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
꾸란에 나오는 요셉과 형제들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요셉 형제들이 그들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하십니다.
“내일 저희와 함께 가도록 해주십시오. 그가 놀면서 즐기도록 잘 지키겠습니다” (12장 유습 12절)
알 까디 아부 바크르 이븐 알 아라비는 이 구절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보아라.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성공을 허락하시기를. 여기에 언급된 놀이 중 부끄러울 것은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도 사내들이 말과 놀고, 가족과 놀고, 화살을 들고 노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요셉의 형제들이 했던 놀이는 달리기나 활 쏘기 였을 수 도 있다. 다음 구절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비난할 것이 하나도 없다.”
“보십시오 아버지, 서로 경주하며 놀았습니다” (12장 유습 17절)
아이샤도 비슷한 맥락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비시니아 사람들이 성원에서 창을 들고 놀고 있을 때, 나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내 방 문 옆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분은 나를 옷자락으로 감싸고 그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했다. 그분은 그렇게 오랫동안 서서, 내가 그 모습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상상해보라, 어린 소녀가 그런 재미있는 구경을 하면서 얼마나 흥미로워 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