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대한 왜곡-1편

Originally posted 2019-09-22 05:11:25.

 

이슬람에 대한 왜곡과 오해를 제대로 조명해서 진실을 밝히려고 합니다 만 하지만 알리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비위를 맞추거나, 비난하거나 또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이슬람에서 그런 행위는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이슬람은 정도를 걷는 생각과 행동을 요구합니다. 진실을 밝히고 알리면서 사람들 인식을 새롭게 하고, 지적이고 책임을 아는 합리적인 존재답게 각자가 스스로 보고 결정하도록 돕는 것이 이 글을 올리는 의도입니다.

 

우리는 종종 충격적인 기사나 논평을 접합니다.

‘성전’, ‘반 그리스도 이슬람’, ‘일부다처제’, ‘이혼’, ‘이슬람에서 여성 지위’ 등등이 자주 거론되는 주제입니다. 진실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악의까지야 없겠지만 오해하고 있는 정직한 사람들을 위해 이 주제에 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전 (지하드)

이슬람이 칼로써 전파되었을까요? ‘꾸란 아니면 칼’ 이란 것이 무슬림들 상징이었을까요? 무슬림은 세속 권력이나 전리품만을 추구하는 제국주의자였을까요? 이런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꾸란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요? 이와 관련해 무함마드 전기가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진실과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는 정직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답을 찾아서 분명하게 밝혀야 할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꾸란은 세상에 불의와 압제와 변덕스러운 야심, 독단적 주장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쟁은 필연이고, 현실이란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런 주장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역사의 먼동이 틀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국지전과 내란, 세계 대전으로 인류가 고통 받아온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강한 동맹국이 분쟁을 전쟁이나 전쟁 위협을 통해 해결하고, 자국 이익을 챙기고 약한 상대를 결정한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오늘날도 인류는 세계도처의 분쟁지역에서 끊임없는 전쟁 공포와 소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현실을 간과 했을까요? 혹은 꾸란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으로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없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이슬람은 정의, 자유, 평화 그리고 정당 방위를 위한 적법하고 정당한 길로서 전쟁을 인식합니다.

 

꾸란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을 명했으나 그대가 싫어하니, 그대가 싫어함에도 이로운 것이 있으며, 그대가 좋아함에도 해로운 것이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을 그대는 알지 못함이로다.” (꾸란 2장 216절)

 

“사람들 중에 한 무리를 세우지 않는다면, 이 땅은 해악으로 가득할 것이니, 진정 하나님은 온 세상에 자비로서 충만 하시 노라.” (꾸란 2장 251절)

 

“사람들 중에 한 무리를 세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무수히 찾는, 수도원과 교회와 유대회당과 마스짇이 허물어지리니.” (꾸란 22장 40절)

 

이슬람적 관점은 현실에 기초하지만, 침략하는 것은 물론, 침략 전쟁 도발이나 개입도 결코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무슬림은 타인 권리를 침해한다든지, 공격적인 행위에 동참하거나, 전쟁을 일으키지 말도록 하는 하나님 명을 받았습니다.

 

다음과 같은 꾸란 구절은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길에서 침략자와 싸울 것이나, 한계를 넘지 말지니, 하나님께서 위반자를 사랑 않으시니라.

 

이슬람이 이처럼 평화로 불리는 종교이고, 무슬림이 그처럼 평화에 헌신한다면, 또 꾸란이 평화를 지지한다면 무함마드가 전쟁을 하고 전투를 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째서 꾸란은 저들을 죽이고 또 저들과 싸우라고 말하는 걸까요?

 

일견 순진해 보이는 이 질문을 검토하려면, 어쩔 수 없이 무슬림이 불신자들과 싸워야 했던 역사적 사실과 전쟁을 예견한 사례 몇 가지를 언급해야만 할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임무를 부여 받은 무함마드는 공개회의를 소집하여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내용을 전하면서, 우상 숭배를 버리고 오직 한 분 이신 진짜 하나님을 믿으라 호소했습니다.

 

무함마드가 행한 최초의 평화적이고 논리 정연한 호소는 곧 바로 저항에 부딪혔을 뿐 아니라 조롱과 냉소, 비웃음을 받았습니다. 무함마드는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축복받을 부름을 말했으나 성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이슬람을 전파하는 길이 막히자, 교우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박해를 덜기 위해 몇 년에 걸쳐 은밀히 선교했습니다.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선교하라는 지시를 내린 후, 무슬림은 점점 더 심한 박해와 고문을 받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무슬림 수는 늘어만 갔습니다. 이교도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침묵시키려고 온갖 압력과 회유를 시도했지만, 이런 기도가 되풀이될수록 무함마드와 무슬림 교우들은 점점 더 의연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교도들은 위협, 압력, 재산의 몰수, 조롱 등으로 이들의 믿음을 깨뜨릴 수 없자, 조직적으로 경원하고 심지어 추방운동까지 벌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 무슬림은 메카에서 사람들에게 선교는 물론이고, 물건을 팔거나, 결혼도 할 수 없었을 뿐 더러 심지어 어떤 형태로든 접촉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무슬림들 믿음은 흔들리지가 않았고. 마침내는 이교도들도 지쳐 경원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배척운동이 끝났다고 해서 평화가 찾아오거나 평온을 기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압박과 박해는 더 심해졌지만 이런 일들이 무슬림들 신앙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를 못했습니다.

이교도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수뇌회담을 열어 이슬람을 뿌리 뽑고, 무함마드를 제거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각 부족에서 전사 한 사람씩을 뽑아 무함마드가 잠자는 틈을 타서 살해하자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무함마드 사명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무함마드에게 고향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가서, 메디나 무슬림들이 이전에 메디나로 피신한 이주자들과 재결합을 하도록 지시 하셨습니다. (꾸란 8:30, 9:40 참조)

이것이 바로 히즈라 혹은 이주라는 대사건이며, 이슬람 모든 역사는 여기서부터 열리고 이슬람력은 이때부터 시작합니다.

 

메카를 떠나 피신하는 무슬림은 가족이나 재산을 남겨 놓은 채 출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메디나에 정착한 무함마드는 곧바로 평화적인 선교를 재개하여 이슬람으로 정중하게 초대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부르심에 기꺼이 부응하여 무슬림 공동체에 어엿한 구성원으로 되었지만,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이 지닌 전통적인 신념을 지키려는 사람도 그 만큼 있었습니다.

고귀한 평화와 개혁에 헌신하려는 무함마드는, 비무슬림과 조약을 체결 함으로서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고 편협한 부족적 충성 대신 사회적인 양심을 일깨웠습니다.

 

이러한 개혁으로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무슬림 공동체를 조직하고 무슬림과 비무슬림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사회 기초를 닦는 데에 힘쓰는 동안, 메카에 있는 적들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무슬림에 대한 증오심이 불처럼 타올랐고 이슬람을 뿌리 뽑겠노라는 결의는 하루 다르게 굳세어졌습니다. 그들은 전략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워 실행에 착수했습니다.

대외적으로 무슬림을 곤경에 빠뜨리자는 작전이었습니다.

 

메카 적들은 메디나를 공략해 닥치는 대로 전리품을 취할 생각으로 약탈침략군을 조직했습니다. 한편 메디나에서 이슬람이 인기를 끌고, 무슬림이 서로 형제처럼 여기며 친교를 나누자, 다른 비무슬림은 그 모습을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카의 적들은 이런 상황을 놓칠세라, 메디나의 비무슬림 세력을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기에 찬 메디나 비무슬림은 메카사람 선동에 반응하여, 메디나 전역에 걸쳐 심각한 분란이 발생했습니다. 무슬림은 이제, 메카에서 오는 조직적 침공뿐만 아니라 메디나 내부 난동 꾼들로부터도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무슬림은 더 이상의 박해와 위협을 감당할 수 없는 막바지에 몰렸습니다. 가족과는 강제로 헤어졌고, 재산도 몰수당했으며. 일부는 생명까지 잃었습니다. 무슬림은 세 번에 걸쳐 고향을 떠나야만 했는데, 그 중 두 번은 이디오피아로, 한 번은 메디나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13년이 넘게 고초를 견뎌야 만 했습니다. 메카 적들이 세운 새로운 전략 앞에서 무슬림은 대량 학살당하는 최후를 기다리거나 압제와 박해에 대항하여 자신들을 스스로 지키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역설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이슬람은 무슬림에게 존엄과 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고, 선과 협력, 능력과 평화에 관한 한 최고 원천이신 하나님과 동맹을 맺어주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도움 받기는커녕 근심과 위협 속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슬람은 무슬림들에게 평화를 수립하고, 의를 명하며, 악을 금하고, 억압당하는 자들을 옹호하며, 피지배자를 해방시키고, 하나님 종복에게 얼마나 믿음직하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인지를 입증 할 임무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무슬림이 스스로 억압당하고 무력하며 공포에 질려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가 있을까요?

 

이런 문제에 대해 특별히 어떻게 하라는 지침이 꾸란에는 없었기 때문에 당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혹감이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상황에 처한 무슬림들 문제를 해결 할 말씀을 내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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